실험실 벤처 CEO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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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1호 대학 실험실 벤처기업인 SNU프리시젼의 박희재 대표(서울대 공대 교수)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서울대 공대 교수직을 유지하면서 연 매출 700억원대의 회사를 챙기는 것 자체도 힘든데 ‘절대적인 시간’이 없다. 그는 대학 근무 시간에서 회사 경영에 할애할 시간이 20%로 묶여 있다. 다른 일반 기업 CEO의 5분의 1도 안되는 시간 안에 연구와 강의, 경영까지 다 끝마쳐야 한다.

 까다롭고 비현실적인 대학 규정이 ‘창업 아이템의 보고’로 불리는 대학 실험실 벤처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18일 코스닥협회와 SNU프리시젼 등에 따르면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대학 실험실이 모태가 된 벤처 창업은 줄잡아 1000여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CEO가 교수직을 유지하면서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은 10여개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학 실험실 벤처 기업 운영은 자본이 아닌 기술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 점에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기술 개발자인 교수의 경영 참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안정적 경영을 위해 교수가 학적을 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다수의 대학 실험실 벤처들은 아예 문을 닫거나 채 꽃피기도 전에 유명무실화하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벤처 기업 경영의 현실과 맞지 않은 대학 내부 규정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화여대·KAIST·한양대 등 대부분의 주요 대학은 2년 이상 교수와 기업 대표의 겸직을 허용하지 않는다. 일부 대학은 2년 이내 뚜렷한 사업 성과를 내 대학 본부 측의 허가를 받아야 겸직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

 서울대처럼 겸직을 하더라고 근무시간의 20% 이상을 벤처기업 경영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해 놓은 대학도 여러 곳이다.

 박희재 대표는 “아무리 좋은 기술을 보유해도 2년 이내에 뚜렷한 성과를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며 “기왕 실험실 벤처 창업을 지원하기로 했으면 안정적인 경영을 지속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일정 비율 이상의 지분이나 수익금을 대학 측에 기부하도록 의무화한 규정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대학 실험실 벤처 성과의 대학 수익화’라는 명분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경영에 필요한 재투자를 가로막을 수 있다. 일부 대학은 사업 관련 모든 내용을 대학 본부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했다.

 대학에서 기술을 개발해 사업화하는 것보다 논문 한 편을 게재하는 것을 더 인정하는 풍토 역시 개발자인 교수의 자율적 경영을 지나치게 제한한다.

 광학 박막 장비를 개발하는 실험실 벤처 나노-뷰의 오혜근 대표(한양대 교수)는 “논문 출고를 위한 연구 지원과 달리 벤처 창업은 지원금이 비현실적으로 적은 수준”이라며 “아무리 좋은 기술로 사업화에 성공해도 일정 수준의 논문 실적이 없으면 불이익을 받는 구조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USN 기술 관련 실험실 벤처기업 에스엔알의 김대영 대표(KAIST 교수)도 “벤처 사업이 본격화하면 교수들이 경영과 기존의 연구 성과를 함께 추진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SCI급 논문 출고를 무엇보다 최고의 업적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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