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정보책임자(CIO)의 목소리가 커져야 합니다.”
“CIO는 적어도 3년 이상 장기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CIO들이 뭉쳐야 합니다.”
CIO들을 만나 CIO 위상을 말할 때 자주 듣는 얘기다. CIO의 위상은 CIO들이 모이면 자주 거론하는 단골 메뉴다. 매년 비슷한 얘기를 듣지만, 대화의 내용이나 CIO들의 다짐은 한결같다.
왜 CIO의 위상은 나아지지 않는걸까. 기업의 정보화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IT 투자 규모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를 총괄하는 CIO의 위상은 왜 여전히 낮을까. 참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국내 CIO들의 위상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사장급 CIO도 있고, CIO 출신 대표이사도 등장하고 있다. 그래도 CIO 위상은 여전히 다른 C레벨 임원에 비해 낮은 편이다.
그 이유에 대해 CIO들 스스로는 CIO가 지나치게 IT 중심의 업무에 매몰돼 있거나, 아니면 전혀 IT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IT 출신의 CIO는 IT를 비즈니스 언어로 바꿔서 CEO나 CFO를 설득하는 데 익숙하지 않고, 비 IT 출신 CIO는 IT에 비즈니스를 담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유를 여러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지만, CIO로서 성공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의지보다 IT 수장의 역할에 만족하거나, CIO가 아닌 다른 보직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는 식의 비판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모든 CIO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올 한해 CIO들에게는 새로운 커리어 패스 롤 모델이 등장해 큰 관심을 모았다. 바로 하나카드가 이강태 전 삼성테스코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영입한 사례다. 이강태 하나카드 사장은 정통 IT 출신이다. 한국IBM을 거쳐 LG유통, 삼성테스코에서 CIO를 역임했다. 삼성테스코 CIO 시절 테스코그룹의 아시아정보시스템 통합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해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하나카드가 그를 대표이사로 영입한 것은, 세계 최대 유통업체 중 하나인 테스코그룹에서 CIO로 혁혁한 성과를 거둔 점을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대표는 카드와 통신, 유통을 접목한 신개념 카드 출시를 준비 중이다.
원명수 메리츠화재 대표도 과거 서울은행, 삼성화재에서 CIO를 지낸 인물이다. 이강태 대표나 원명수 대표의 사례는 CIO로서 성공하는 것이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CIO로서 성공하지 못한 채 그 윗자리만 바라보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얻기 힘들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분명한 것은 속도가 매우 더디긴 하지만 과거에 비해 CIO의 위상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사장급 CIO도 늘어나고 있다. 단순히 CIO의 위상을 높이자고 목소리만 높이지 말고 CIO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역할을 소화하고 기업의 비지니스에 기여한다면 분명 제2, 제3의 이강태 대표가 내년에도 꾸준히 탄생할 수 있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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