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찰스 스트로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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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단편 한 편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지만, 찰스 스트로스는 90년대 등장한 굵직한 영국 SF작가들 중 한 사람이다. 컴퓨터와 약학을 전공하고 약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컴퓨터 칼럼니스트, 자유기고가 등 여러 직업 경력을 가진 독특한 작가이다. 작가로서는 1986년에 영국의 SF 잡지인 인터존을 통해 데뷔했으며, 그 뒤로 ‘싱귤레러티(Singularity)’ 시리즈, ‘머천트 프린세스(Merchant Princess)’ 등 다수의 장·단편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은 정보과학을 기반으로 한 하드SF,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H.P.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도시 판타지 또는 대체역사 소설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

 여기서는 냉전을 배경으로 한 흥미로운 대체역사 중편인 ‘미사일 격차(Missile Gap·2007)을 소개한다.

 작품 제목인 ‘미사일 격차’는 원래 냉전시기의 군비경쟁에 관한 용어로, 스푸트니크 발사의 충격으로 시작됐으며 요약하자면 결국 소련의 군사력을 과장 발표, 미소간의 전략미사일 부문의 군사력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다고 믿게 하여 거기서 촉발되는 위기의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하나의 어젠다와 비슷한 것이었다. 소설 ‘미사일 격차’는 그러한 정치적 인식이 극에 달했던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 직후를 그 배경으로 한다.(쿠바 미사일 위기의 전개 자체도 현실과는 약간 다르다)

 어느 날, 지구의 모든 시계가 멈추고, 날고 있던 항공기와 인공위성이 사라졌다. 정치가들과 과학자들이 허둥지둥 파악해낸 사태의 전모는 이랬다.

 ‘어떤 알 수 없는 존재가, 지구의 지각을 벗겨 내어 소마젤란 성운 안에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원반(disk) 위에 올려 놓았다.’

 이 일이 가져온 여파는 엄청났다. 미국과 소련의 억지력에 의한 힘의 균형은 사라지고 말았다. 껍질이 벗겨질 때, 마치 현재 우리가 보는 세계지도처럼 태평양을 중심으로 대서양이 반토막난 형태가 되고 말았기 때문에, 미국은 유럽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워졌다. 탄도탄 또는 폭격기가 이동하던 북극의 대권 항로가 지구가 평면이 되면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유럽은 소련의 수중에 떨어졌지만, 공격이 어려운 건 소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서로를 공격하는 대신, 대체 어떤 존재가 지구를 이곳으로 옮겨 왔으며 거대한 원반에 존재할 것이 분명한 다른 지적 생명체를 찾아나서기 위해 각자 탐사활동을 벌인다.

 ‘미사일 격차’는 일종의 대체역사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대체역사 작품들이 상세한 배경 설명을 통해 새로 구축한 세계관을 공고화하는 것과 반대 전략을 취하고 있다. 즉, 역사가 대체되는 부분에 있어 인간 역사의 선택이나 흐름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 인간이 위치한 환경 자체가 상상을 초월하는 범주에서 변화하고, 그에 따라 인간들이 다르게 반응하는 내용을 그리는 작품이다.

 작가는 일반적인 SF의 ‘낯설게 하기’ 전략을 구사한다. 독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원반으로 옮겨진 작중의 인류만큼이나 낯선 배경에 당혹스러워 하게 된다. 필요한 정보는 등장 인물들의 행동과 사건을 통해서 아주 조금씩 전달되며, 이러한 분위기를 강화하기 위해 소설은 현재형으로 쓰여졌다. 독자들에게 낯익은 것은 칼 세이건, 유리 가가린, 니키타 후르시초프 등 실제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인물들뿐이다. 작가는 일부러 실존 인물을 낯선 상황에 배치함으로써 독자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소설적 재미를 배가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또한 스트로스 특유의 약간은 시니컬한 문체와 비틀기가 읽는 재미를 추가한다.

홍인수 SF번역가 iamins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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