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방이 한(漢)을 세운 후 논공행상을 할 때 소하를 일등 공신으로 지명했다. 소하는 뛰어난 전략가도, 전투로 여러 나라를 한에 복속시킨 장수도 아닌데 황제로부터 일등 공신으로 지명받았다. 이유는 그가 후방에서 지속적으로 병력과 군량미를 보급해 주고, 든든한 후방 기지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멸망한 진(秦)의 문서보관소에서 지도와 각종 기록 문서를 확보한 것이 건국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 내에서도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려져 있지 않은 기관들이 있다. 조달청이 그런 기관 중 하나다. 조달청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조달청이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의 적정성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난해는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공사비가 많이 상승됐다. 이로 인해 조달청에는 공사계약 금액의 증액 조정 검토 요청이 예년에 비해 세 배나 많을 정도로 쇄도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이후부터 사정은 달라졌다. 철근을 비롯, 주요 자재가격이 하락해 계약금액을 감액 조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반전됐다. 경제가 발전하면 물가가 상승하는 게 일반적이어서 공사계약금액을 증액조정하는 사례는 늘 있어 왔지만 감액조정은 사례가 거의 없었다. 특히 전문성이 부족한 발주기관 공무원이 감액조정까지 미리 생각하기는 힘들다.
조달청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올 초에는 각 정부기관과 공기업 등을 대상으로 자재가격 하락에 따른 공사계약금액을 감액조정해야 하는 당위성과 관련 규정, 관련 물가지수 등을 안내하고, 발주기관을 직접 방문해 설명도 했다. 또 과거 증액조정 검토가 이뤄진 공사들 중에서 감액조정이 예상되는 공사들을 파악해 발주기관에 알려주기도 했다.
비록 눈에 띄지 않지만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의 적정성 검토 업무는 계약업체가 부당하게 이득을 얻거나, 또는 손해 보지 않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이다. 국가 재정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조달업체는 물론이고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고 자부해 본다.
고임세 조달청 예산사업관리과장 esgoh@pps.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