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국 정부는 그간 미국의 지배구조 아래 글로벌 인터넷 정책을 관장하는 ICANN이 자문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점에 불만을 가져왔다. 이런 불만은 2003년 UN 세계 정보화사회 정상회의에서 터져나왔다. 중국·사우디아라비아·브라질·인도 등이 미국에 국제화를 요구했고, 그 결과 비상설 국제기구인 UN인터넷 거버넌스 포럼(IGF)이 2006년에 만들어졌다.
UN 사무총장이 소집하는 포럼은 5년간 운영된 뒤, 연장 여부를 2010년 UN 총회에서 결정한다. 최근 11월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이집트의 샴엘셰이크에서 개최됐던 포럼에서는 포럼 연장 여부에 대한 각계 의견이 수렴됐다. 지난 4년간 포럼은 ICANN 가치를 전파하는 장으로 사용됐다. 중국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기업과 시민사회 참가자들은 포럼의 지속을 주장했다. 미국은 ICANN을 통해 정부에 의해 독점되던 공공정책 결정 대신, 인터넷에서는 기업이 공공정책을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는 IGF가 폐기돼야 한다는 중국정부 입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성명의 대부분은 현재 IGF에 흡족하다는 의견들이 제시됐다. 나는 “IGF의 민관협동관리는 ICANN이 개도국에 지식 및 정책을 전달하는 점에서는 효과적이나, 현 미국정부 위주 국제 인터넷 거버넌스의 제도적 개선을 위한 정치적 협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2010년 리투아니아에서 개최될 포럼이 지식전달과 정치협상을 균형 있게 다루지 못한다면, 중국정부가 원하는 정치적 협상은 현 포럼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상기시켰다.
2003년 세계 정보화사회 정상회의부터 불거진 ‘인터넷을 누가 관리하느냐’를 놓고 벌어지던 다자간 대화는 2009년 포럼을 계기로 미국정부와 중국정부의 대결 구도로 펼쳐지고 있다. 중국정부는 만약 IGF가 지속된다면, 향후 IGF사무국 재정은 UN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UN에서 파견된 중국 출신의 샤 주캉 UN 부총장은 포럼 마지막 날, 포럼의 지속 여부에 대한 의견수렴을 마무리하면서, IGF사무국이 UN의 재정지원하에 운영돼야 한다는 중국정부의 제안에 힘을 보탰다.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은 2010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문제는 과연 포럼이 선진국으로부터 개도국으로의 일방적인 지식 및 정치적 가치를 전달하는 장으로 유지될지, 중국정부가 원하는 대로 정부들 간 국제 인터넷주소자원 관리를 두고 미국정부와 정치적 협상을 할 수 있는 장으로 진화할지다. 내년 UN 총회에서 결론이 기대된다.
한국은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에 적극 참여하지 않고 있다. ‘포럼에 참여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냐’는 논의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참가를 늦추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 정부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결정한 뒤, ICANN과 포럼을 중심으로 우리의 이해관계를 구현해야 한다. 중국 시장이 미국보다 커지면서, 많은 국제 정책 전문가들이 새로운 그림을 짜고 있다. 인터넷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박윤정 델프트공대 교수(인프라경제학) Y.J.Park@tudelft.n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