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난에 따른 대학 구조조정과 통폐합, 등록금 분쟁, 대학정보공시제 시행, 대학 자체평가 등으로 국내 대학가는 바람 잘 날이 없다. 특히 신입생 수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외국대학까지 국내에 진출하면서 대학 간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대학들은 ‘더 많은 신입생 유치’와 ‘졸업생 취업률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이처럼 무한경쟁 체제에서 대학들은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생존 전략을 펼치고 있다. 특히 등록금 인상 외에는 획기적인 재정확보 방안이 없는 대학들로서는 최근 들어 대학 운영의 효율화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눈에 띄는 것은 많은 대학들이 기존 정보시스템을 개선하거나 대대적인 대학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행정 혁신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IT 예산이 일반 기업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대학 행정 업무의 특수성으로 인해 혁신 작업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국내 대학 IT책임자들의 고민도 깊어질 수 밖에 없다.
CIO BIZ+와 전국대학IT관리자협의회는 국내 주요 대학의 IT담당 부서장과 실무진을 대상으로 내년도 정보화 추진 전략, 투자계획, 전사적자원관리(ERP)의 필요성 등 대학정보화 관련 주요 현안에 관한 설문조사를 공동으로 실시했다. 설문에 참여한 대학은 총 58개로, 이 중 학생 수 기준으로 7500명 미만의 대학이 41.4%(24개)로 가장 많았고, 1만5000명 이상인 대학이 32.7%(19개)로 뒤를 이었다. 학생수가 7500명 이상 1만5000명 미만인 대학 중 설문에 응답한 학교는 25.9%(15개)였다. (*1그룹-학생 수 7500명 미만, 2그룹-학생 수 7500명 이상 1만5000명 미만, 3그룹-학생 수 1만5000명 이상)
설문에 응한 대부분의 대학이 내년 IT예산을 올해와 비슷한 규모로 예상하거나 소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늘어난 예산의 투자 1순위로는 정보보안시스템 강화가 꼽혔으며, 차세대 대학통합정보시스템 구축과 네트워크 및 서버 등 노후 장비 교체도 집중 투자항목인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IT예산 올해와 동일 ‘58.6%’=내년도 국내 대학들의 IT 예산 전망치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8.6%가 올해와 동일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27.6%는 올해 대비 증가할 것으로 답했고, 10.3%는 올해 대비 20%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올해 대비 감소할 것으로 답한 곳은 13.8%에 불과했다.
경기 침체 속에서 대학들의 재정난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이처럼 IT 예산이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거나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인 것은 의외의 결과다. 이는 대학의 IT예산 중 유지보수 비용 등 고정비용의 비중이 많은 상황에서 기존 노후화된 장비 교체, 정보보호 시스템 확충 등 불가피한 신규 투자 항목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IT예산이 줄어든 대학의 경우 재학생 수 감소로 인해 전체 예산이 축소되면서 IT예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국내 대학들의 IT 예산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설문조사 결과 대학의 IT 예산은 학생 규모와 비례했다.
7500명 미만의 학생 수를 보유한 1그룹 대학의 경우 올해 IT 예산이 5억원 미만이라고 답한 곳은 무려 54.2%에 달했다. 이어 5억원 이상 10억원 미만인 곳이 25%였다. 학생 수 7500명 이상 1만5000명 미만의 2그룹의 경우 5억원 이상 10억원 미만, 10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인 곳이 각각 53.3%, 46.7%를 차지했다. 1만5000명 이상의 학생을 보유한 3그룹 대학의 경우 응답자의 84.2%가 10억원에서 50억원 사이의 IT예산를 투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50억원 이상의 IT 예산을 확보하고 있는 곳은 3그룹에서 3개 대학에 불과했다. 연 100억원 이상의 IT 예산을 투자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설문에 응한 한 대학 관계자는 “대부분의 대학 관리자들은 IT 예산이 너무 적다고 느끼고 있다”며 “하드웨어 시스템의 추가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SW) 유지보수 비용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예산이 올해에 비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신규 투자를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보안 투자에 일순위=국내 대학들은 내년에 제일 집중적으로 투자할 IT사업으로 정보통신 보안 및 개인정보보호 등 정보보안 사업을 꼽았다. 내년에 대학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과제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5.8%가 정보보안 강화라고 답했다. 이는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 등 보안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화가 되고 있는 만큼 확고한 보안 체계를 갖추는 것이 절실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보보안의 경우 올해에도 많은 대학들이 강조했던 영역이다. 올해 대학들이 추진한 핵심 IT 프로젝트들을 살펴봐도 웹 방화벽 도입, 보안정보관리시스템(SIMS) 구축 등 정보보안 강화에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정보보안 강화에 이어 ERP 등 행정정보시스템 구축(21.2%), 시스템 통합을 통한 효율적인 IT 자원 관리(11.8%) 등도 내년의 주요 과제로 조사됐다. 이는 3개 그룹 대학이 모두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다만 학생 수가 많은 3그룹 대학의 경우 노후 시스템 업그레이드와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구축 등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전국대학IT관리자협의회 황건준 회장(전주대학교 정보통신지원실장)은 “대학정보공시제에 따라 대학이 관련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만큼 각종 통계자료와 추이분석 등을 위한 BI 솔루션 도입이 늘어날 전망”이라며 “특히 차세대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하기에는 비용 측면에서 큰 부담을 느끼는 대학의 경우 BI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중점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년도 대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IT기술에는 통합보안 기술이 32%로 가장 많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이는 대학들의 내년 IT투자 우선순위와도 일맥상통한다. 눈여겨 볼만한 점은 보안 기술에 이어 통합커뮤니케이션(UC) 기술(23%)에 많은 대학 관리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 교직원, 대학원생 등 대학 구성원간의 정보소통 채널을 보다 효율화하는 데 많은 IT관리자들이 고민하고 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3그룹 대학의 경우는 가상화 기술에도 높은 관심을 보였다. 다른 그룹의 대학들에 비해 사용자 규모가 많은 만큼 시스템 또한 방대해지면서 기존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가상화 기술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ERP 도입 ‘회의적’이지만 검토는 ‘계속’= 대학들의 행정정보시스템에 대한 개선 작업은 매년 추진돼 온 것이지만 최근에는 ERP 기반의 대학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곳도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대학가에서는 ERP 도입을 놓고 실효성에 대한 찬반 논쟁이 거세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대학경쟁력을 높이는 데 ERP가 필요한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강했다. ERP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대학이 60.4%(35개)인 반면, 필요하다로 답한 대학은 37.9%(22개)였다. 이처럼 ERP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면서도 ERP 도입을 검토 중이거나 검토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대학은 41.4%(24개)로 나타났다. 이중 내년에 도입하겠다고 결정한 대학은 6%였다. 반면 전혀 도입할 의향이 없다고 답한 곳은 34.5%(20개)였다. 나머지는 이미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대학이었다. 즉, ERP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하지 않으면서도 도입 검토 작업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설문에 응한 대학들은 ERP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로 대학정보 서비스 질 향상과 경영의 투명성 제고를 가장 높이 샀다. 각각 36.2%(21개)로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이외에도 업무 효율성 향상과 자산관리 비용 감소 등을 ERP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로 지목했다. 하지만 ERP 적용 범위를 놓고는 의견차가 컸다. 일반·학사·연구 행정 등 모든 업무영역에 ERP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39.7%(23개)로 가장 많았지만 일반 행정에만 도입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24.2%(14개)였다. 이는 국내 대학에 ERP가 처음 도입되던 시점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슈화되고 있는 부문 중 하나다. 한 대학의 IT책임자는 “초기에는 많은 대학들이 일반 행정에만 부분적으로 ERP를 적용했지만 최근에는 단계별로 확대 적용해 나가는 추세”라며 “ERP 운영의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전사 영역에 걸쳐 도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학들은 ERP 도입시 단기간에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점을 큰 부담으로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 ERP 도입의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과반수가 넘는 51.7%의 응답자가 많은 비용을 꼽았다. ERP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30억원, 많게는 80억원 가량의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의 기존 IT예산 수준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에 최근에는 외산 ERP 도입 대신 SI 개발 방식이나 국내 대학의 특성을 반영한 국산 ERP 솔루션에 관심을 가지는 곳도 많아졌다.
윤철주 대우정보시스템 상무는 “ERP를 도입했다고 해서 대학 순위가 올라간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대학으로서는 선뜻 투자결정을 내리기 힘든 입장”이라며 “이에 최근 들어 ERP 패키지와 SI 개발의 성격을 혼합한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도입 방식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ERP를 도입할 것인가, 이를 통해 어떻게 경쟁력을 높일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
"ERP 패키지 도입보단 자체 개발 선호"
국내 대학들은 통합대학정보시스템 구축 방안과 관련해 전사적자원관리(ERP) 패키지 도입보다 직접 개발 방식의 시스템 구축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ERP 패키지 도입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22.4%에 그친 반면, SI 개발을 더 선호한다는 응답은 무려 65.5%로 조사됐다. 최근 통합정보시스템 구축에 나선 부경대학교, 충남대학교 등을 비롯한 많은 대학들은 ERP 시스템을 기반으로 구축하기 보다 SI 개발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대학내에서 학생과 교수, 행정직원들이 받아야 하는 서비스는 모두 다르다”면서 “한 대학에서 고객별로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 패키지 솔루션으로도 한계가 있고 사실 SI 개발 작업 역시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3개 대학 중 1개 대학이 ERP 도입을 통해 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며 “글로벌 표준에 맞춘 패키지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에 향후 시스템의 안정성이 입증되면 많은 대학들이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패키지의 경우 SAP, 오라클 등과 같은 외산 솔루션이 국산 솔루션보다 인지도가 높았다. 특히 ERP 시장의 양대 산맥인 SAP와 오라클 솔루션을 놓고는 많은 대학들이 SAP 솔루션을 더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ERP 솔루션 업체의 선호도 조사 결과, 질문에 응답한 32개 대학 중 절반 이상인 17개 대학이 SAP를, 4개 대학이 오라클를 선택했다. 나머지 11개 대학은 영림원소프트랩 등 기타 제품을 택했다.
SI 개발을 통해 통합대학정보시스템을 구축할 경우에는 대우정보시스템, LG CNS, 삼성SDS, 토마토시스템, 아이티즌 등이 설문 응답자들이 선호하는 업체로 거론됐다.
설문에 참여한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 규모와 개발 범위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경영 상태 등이 양호한 대형 SI 업체들을 선호한다”면서 “특히 대학 시스템의 개발 노하우가 많은 업체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들은 솔루션이나 구축 업체 선정시 개발 지원 능력을 가장 우선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7.3%가 개발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고, 이어 시스템 안정성(17.2%), 국내 시장 점유율 및 인지도(7%) 등를 고려 대상으로 꼽았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ERP 도입 계획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