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로봇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이 있는데, 연출을 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로봇이 무대에 오르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빨리 왔네요.”
세계 최초로 로봇인 에버3가 주인공을 맡은 연극인 ‘로봇공주와 일곱난쟁이’의 연출을 맡은 김현탁씨(39)는 이번 연극이 예술과 과학의 만남을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영역이었기에 연출자로서 기쁨도 컸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배우들이 로봇처럼 연기하는 극을 연출한 적은 있었지만, 그 반대는 처음이죠. 모든 게 새롭고 어려웠습니다. 로봇을 중심으로 무대를 세팅하다보니 기존 연극에서 쓰던 장치를 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또 우리나라 로봇 기술이 굉장한 진보를 이뤘지만, 아직 연극에 적용하기에는 움직임 등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았죠. 그래서 로봇을 조종하는 박사님들과 배우들이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주문했습니다. 로봇과 배우의 호흡이 맞지 않고 어색하다면 극을 보러온 관객들이 실망할 테니까요.”
김현탁씨 그동안 ‘산불’ ‘만선’ 등 사실주의 희곡을 많이 했다. 언어극을 신체극으로 풀어서 하는 연출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무대 위에서의 신체 언어에 능숙한 그를 에버3 연구팀이 찾게 된 것은 당연한 순서이었다. 처음에는 연극에 대한 자문을 하다 결국 연출까지 맡게 됐다.
그는 로봇을 조종하는 이들에게 연기에 필요한 것들을 세세하게 주문하지 않았다. 다만 극 전체의 큰 틀에서 그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느낄 감정들을 설명했다. 배우들에게는 로봇이 멈췄을 때 등 돌발상황 대응 방법을 숙지시켰다.
그러나 처음 시도하는 일이다보니 아쉬움도 많았다. 연출자 스스로가 로봇을 잘 몰랐고, 배우들에게 로봇을 온전한 배우로 인식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로봇 강국으로 발전하면서, 이런 유형의 연극이 많이 시도될 겁니다. 단순히 로봇의 움직임을 자랑하는 전시회가 아닌 로봇 연극이라는 콘텐츠로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로봇만의 연극언어, 공연언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에버를 아무리 사람처럼 만들어도 인간의 무대적 언어를 구사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로봇이 인간을 흉내내기보다는 로봇만의 연기 방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번 공연을 계기로 그는 해외 공연이나 다른 이야기를 통한 연출에 대한 욕심도 나타냈다.
“로봇에 대해서는 세계 관객들이 비슷한 코드를 공유하고 있고, 이야기도 쉽기 때문에 해외 공연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로봇을 주인공으로 다시 한 번 연출한다면 입센의 ‘인형의 집’을 해보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마리오네트로 시현했지만, 로봇으로 하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
많이 본 뉴스
-
1
내년 '생성형 AI 검색' 시대 열린다…네이버 'AI 브리핑' 포문
-
2
5년 전 업비트서 580억 암호화폐 탈취…경찰 “북한 해킹조직 소행”
-
3
LG이노텍, 고대호 전무 등 임원 6명 인사…“사업 경쟁력 강화”
-
4
AI돌봄로봇 '효돌', 벤처창업혁신조달상품 선정...조달청 벤처나라 입점
-
5
롯데렌탈 “지분 매각 제안받았으나, 결정된 바 없다”
-
6
애플, 'LLM 시리' 선보인다… “이르면 2026년 출시 예정”
-
7
'아이폰 중 가장 얇은' 아이폰17 에어, 구매 시 고려해야 할 3가지 사항은?
-
8
美-中, “핵무기 사용 결정, AI 아닌 인간이 내려야”
-
9
삼성메디슨, 2년 연속 최대 매출 가시화…AI기업 도약 속도
-
10
美 한인갱단, '소녀상 모욕' 소말리 응징 예고...“미국 올 생각 접어”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