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녹색정책, 기업 피부에 와닿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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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11월께였다. 영국을 다녀온 후 남은 파운드를 공항에서 환전하는데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영수증에 찍힌 금액이 수수료를 제외하고도 파운드로 바꿀 때보다 많았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기쁨도 잠시, 원화 가치가 폭락하기 시작했고 대한민국은 IMF 관리체제로 직행했다. 대한민국은 경제위기를 맞이했지만 희망이 있었다. 그 희망은 벤처와 인터넷이었고 온 국민의 피나는 노력으로 2001년 8월 IMF 관리체제에서 졸업하는 신화를 이뤄냈다.

 10여 년 후인 2008년.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한 금융위기가 대한민국에 몰아쳤다. 순식간에 IMF 관리체제 수준의 대공황에 빠져들었다. 금융위기의 한파가 가시진 않았지만 대한민국엔 또 한번의 기회가 왔다.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그린레이스에 대한민국이 당당히 이름을 올려놨기 때문이다. 정부는 작년 8월에 내놓은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국가비전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녹색강국의 꿈에 부풀어 있다.

 10여 년 전 인터넷·벤처 붐이 불기 전에도 위기가 있었고, 녹색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지금도 미국발 금융위기를 맛봤다. 참으로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다. 10년 전엔 벤처를 차리고 투자하는 분위기가 아주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특히, 민간 부문의 투자 열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됐다. 심지어 ‘묻지마 투기’의 경지까지 이르렀다. 그만큼 거품도 많고 부작용도 있었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실현해가는 여러 축 중 녹색금융이 요즘 관심을 끌고 있다. 아무리 ‘저탄소 녹색성장이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길’이라고 외쳐도 시장에 자금이 원활하게 돌지 않으면 기업은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는 ‘녹색인증제’로 실물투자 여건을 개선하는 구도를 그리고 있다.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무엇이 녹색인지 구분할 수 있도록 인증함으로써 투자 여부 판단을 돕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금융기관이 투자하는 데 판단 기준을 제공하되 10여 년 전과 같은 ‘거품’은 극도로 경계하는 눈치다. 거품으로 인해 실패한 정책으로 낙인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에 정부가 마련한 녹색인증제는 금융기관의 녹색 변별력 측면만 고려한 정책으로 끝날 소지도 있다. BIS자기자본비율을 의식한 금융기관이 담보 없으면 대출이나 투자를 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탄소 녹색성장 비전이 발표된 지 1년이 훌쩍 지났고 정부는 벌써 생활화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생활화는 엄청난 노력과 투자 없이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녹색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 경영자들은 정부가 잇따라 내놓는 지원 방안들, 특히 녹색인증제나 녹색금융 제도를 두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그림’에 불과하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2000년 초 인터넷·벤처 붐으로 거품도 심하게 일었지만 거품이 걷히고 나자 튼실한 벤처와 그렇지 못한 벤처는 확연히 구분됐다. 그리고 인터넷은 모든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 자타공인 e비즈니스 전도사로 통하는 한 대기업 임원이 “거품이 걷히고 나니 모든 기업이 e비즈니스화됐더라”고 한 말에 적극 공감한다.

  주문정·그린데일리 팀장 mj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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