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하라고 하니까 어차피 엔터프라이즈아키텍처(EA)를 해야 하는데, 솔직히 EA의 취지를 잘 모르겠어요.”
최근 기자가 사석에서 만난 공공기관의 IT 부서 관계자는 EA에 대해 이처럼 하소연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기관에 EA 도입을 의무화한 법률 때문에 많은 공공기관이 EA를 도입하고 있지만 발주 기관의 담당자조차 EA에 대해 명확한 개념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또 IT 부서와 현업이 밀접하게 의견을 교환하지 않은 상태에서 EA를 수립하는 공공기관도 아직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많은 경우 IT 부서가 현업의 임직원들을 설득할 역량이 없거나 그런 노력이 부족한 것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EA 프로젝트는 결국 외부에서 투입된 컨설턴트만의 과제로 여겨지게 된다. 발주 기관은 단순히 컨설턴트가 요구한 사항을 전달하는 역할만 하게 된다. 누구보다 업무를 잘 알고 있는 발주 기관 인력들이 EA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 컨설턴트가 주도적으로 해당 기관의 EA를 수립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최근 들어 EA 전문가들을 만나면 겉으로는 활발하게 추진되는 것처럼 보이는 공공기관의 EA에 대해 실효성 측면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 중 대표적인 문제점이 바로 EA 프로젝트의 산출물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껏 많은 돈을 들여 EA를 추진했지만 그 결과물은 문서로만 존재할 뿐 EA를 실질적인 IT 정책이나 과제 수립에 제대로 적용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한 EA 전문 컨설턴트는 “발주처 관계자가 EA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다 보니 비즈니스아키텍처(BA)와 데이터아키텍처(DA)가 각기 따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아키텍처에 대한 효율적인 상관 분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BA와 DA를 수립하면 EA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따라서 EA를 수립하는 기관의 관계자는 적어도 직접 EA를 수립하지는 못하더라도 반드시 해당 프로젝트 팀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문제는 EA를 수립한 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공기관들이 활발하게 EA를 수립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난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많은 공공기관들은 EA 수립에 나섰다. 당시 공공기관들은 EA를 수립하기 위해 정보 시스템 상위 레벨의 데이터 및 프로세스 모델과 아키텍처를 수립했다. 이후 정보 시스템은 수도 없이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상위 모델과 아키텍처는 이러한 변화에 따른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매번 처음부터 EA를 다시 수립하는 결과가 빚어지고 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법으로 EA를 강제하다 보니 EA를 수립하는 것에만 중점을 둘 뿐 사후 관리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관장 평가에 EA 활용이나 사후관리보다는 진행 자체만 적용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더욱 커지게 됐다는 것이다. EA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혜권기자 hk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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