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신중한 출구전략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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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이형기는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말했다.

 살다보면 적당한 선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있다.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쉽지만 미련을 두지 않고 일을 접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떠날 때’를 분명히 아는 것은 쉽지 않다. 적절할 때 떠나면 환영을 받지만 타이밍을 놓치면 그 효과는 반감된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매도 매수 타이밍을 놓치면 큰 손해를 입기 십상이다.

 정부의 경제 정책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적절한 상황에 정책을 실행하고 철수해야만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실패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래서 정부는 항상 정책 집행시기와 철수시기를 두고 고민을 거듭한다.

 지금 정부는 그 같은 고민에 휩싸여 있다. 바로 ‘출구전략’을 두고서다. 지난해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글로벌 경기가 급속도로 위축되자 우리 정부도 경기 위축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투자와 금리인하책 등 다양한 경기 부양책을 실행했다. 그 결과 경기는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기 회복이 확인되면 쏟아냈던 경기부양책을 원상복구하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적절한 시기에 유동성을 회수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적절한 타이밍이다. 성급하게 출구전략이 이뤄지면 장기 침체에 빠질 우려가 있다. 유동성 회수로 경기 상승 후 재하강하는 이른바 ‘더블 딥’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경기회복이 되는 듯한 착시현상 때문에 부양책을 거둬들였다가 10년 장기침체에 빠졌던 일본경제가 대표적인 예다.

 따라서 최근의 경기상황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현 상황으로 볼 때 더블딥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세계 경제가 당장은 정부부문의 강력한 부양책으로 회복되고 있지만 섣부른 출구전략이 이뤄지거나 또는 민간부문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수요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다.

 한국은행은 9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10월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원래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지 않았으나 지난 6일 주요 20개국(G20) 중 처음으로 호주가 금리를 전격 인상하면서 이른바 ’출구전략’에 시동을 걸자 계산이 복잡해지고 있다. 경기부양과 인플레 대처 사이에서 통화정책의 방향 전환 시기를 놓고 고민해왔던 각국 중앙은행은 호주의 이번 결정으로 인플레에 대한 선제적 대처라는 명분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릴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기가 회복되는 국가 중 하나다. 이미 자산가격의 급격한 상승과 함께 원화 가치도 올라가고 있어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금리 인상에 대한 산업계의 우려를 감안해야 한다. 높은 실업률과 저조한 민간투자 등을 감안할 때 본격적인 경기 회복이 진행되고 있다고 점치기 어렵다. 출구전략의 총대를 멘 한국은행이 경제가 완전히 회복됐는지 확인하고 신중하게 금리정책을 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상희·경제과학팀장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