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카메라 사업을 둘러싼 소문으로 증권가가 들썩이고 있다. 소문의 골자는 삼성테크윈에서 분리했던 삼성카메라 사업을 삼성전자가 다시 인수한다는 내용이다. 사업 인수설은 지난 9월 삼성전자 세트 부문을 총괄하는 최지성 사장이 독일 베를린 ‘IFA 2009’ 전시회에서 “카메라를 세계 정상에 올려 놓겠다”는 호언과 맞물려 기정 사실처럼 퍼져 나갔다. 급기야 삼성전자는 “통상적인 사업 시너지를 위한 검토 수준”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소문의 불씨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박상진 삼성디지털이미징 대표(57)는 “카메라를 세계 1위 사업으로 올려 놓기 위한 여러 방법론을 고민하고 있다”며 “여러 방안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박 대표는 삼성이 그만큼 카메라 사업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 달라고 주문했다. 삼성만의 방식으로 ‘카메라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놓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불과 10년 전 미국·유럽 가전매장에서 삼성 TV는 매장 한 귀퉁이에 있는 구색 상품이었다. 휴대폰은 모래밭에서 진주 찾기일 정도로 세계 무대에서는 ‘희귀품’이었다. TV는 소니·샤프 등 일본 제품보다 싸지만 잔고장이 많고 디자인이 떨어진다는 평가로 외면받기 일쑤였다. 휴대폰도 노키아·모토로라에 비해 브랜드가 한참 뒤처졌다.
그러나 삼성은 10년 만에 시장 구도를 바꿔 놓았다. TV 세계 1위, 휴대폰 세계 2위에 올랐다. TV·휴대폰·반도체 등 전자산업에서 일본의 벽을 넘었다. 삼성의 1위 행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급기야 전자·광학 산업의 결정체로 불리는 ‘카메라’까지 눈독을 들였다. 캐논·니콘과 같은 쟁쟁한 ‘카메라 명가’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삼성 카메라 사업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 바로 박상진 대표다. 브랜드·기술력 모두 아직은 일본업체에 비해 부족하지만 박 대표는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캐논·니콘·소니 모두 카메라 분야에서는 만만치 않은 기업입니다. 카메라 사업에 꼭 필요한 핵심 기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브랜드도 삼성이 따라가기에는 아직 역부족입니다. 삼성은 좀 전략적으로 카메라 사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삼성이 잘하는 분야를 십분 활용할 계획입니다. 삼성은 디지털 처리에서 전달까지 모든 영역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리는 반도체, 저장은 플래시 메모리, 표현은 TV와 모니터, 전달은 휴대폰과 통신입니다. 모든 영역에서 삼성이 주도권을 지키지만 카메라와 캠코더 같은 생성 분야는 다소 미흡합니다. 비어 있는 고리를 강한 부분으로 채워 나갈 계획입니다.”
박 대표는 삼성이 카메라를 숙원 사업으로 해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게 짚어냈다. “앞으로 전자 산업은 콘텐츠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부가가치가 하드웨어에 비해 훨씬 높습니다. 갈수록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소비자와 만나는 단말로서 카메라가 중요한 배경도 이 때문입니다. 휴대폰과 디지털 카메라는 소비자 측면에서 친밀도가 가장 높은 제품입니다. 삼성 입장에서는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놓칠 수 없는 분야입니다.”
그러나 삼성 쪽에서 사업 실행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아직도 과연 삼성이 카메라 1위를 달성할지 궁금한 게 사실이다. 삼성전자와 함께 기술 개발에 나서지만 여전히 일본 기업과 격차가 나기 때문이다. 렌즈 핵심 기술은 일본 펜탁스에서, 핵심 부품인 CCD는 경쟁사인 소니와 파나소닉에서 사서 쓰는 상황이다.
“삼성은 가전(CE) 분야가 강합니다. 반대로 일본업체는 광학이 강점입니다. 광학 기술로 삼성이 접근한다면 결국 이들 선발업체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삼성은 대신에 가전에서 쌓은 노하우와 기술력을 십분 활용할 계획입니다. 다행히 디지털 카메라 흐름이 점차 기능 중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광학보다는 소비자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기능을 시장이 원하고 있습니다. 승산 있는 게임이라고 장담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박 대표는 실제로 얼굴만을 선택해 최적의 촬영 조건을 제공하는 ‘페이스 디텍션(face detection)’, 웃는 표정을 골라잡는 ‘스마일 샷(smile shot)’, 감은 눈 촬영을 방지하는 ‘블링크 디텍션(blink detection)’, 얼굴의 잡티를 없애 주는 ‘뷰티 샷(beauty shot)’, 그리고 최근 선보인 듀얼 모니터 기능까지 모두 삼성이 발굴해 카메라의 가치를 높여 준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크게 ‘콤팩트’와 ‘렌즈 교환식(DSLR)’ 카메라로 나뉘어 있다. 최근 DSLR 시장이 커진다지만 아직도 전체 시장의 90%는 콤팩트다. 콤팩트 시장을 잡지 않고는 세계 1위 달성이 불가능한 셈이다. 삼성은 콤팩트 분야는 자체 기술력으로, DSLR는 일본 펜탁스와 기술 제휴를 통해 시장을 공략해 왔다.
박 대표는 당분간 콤팩트 카메라를 축으로 하이브리드 제품에 승부를 걸 계획이다.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펜탁스와 다소 거리를 두는 배경도 이 때문이다. “삼성이 세계 시장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게 2005년이었습니다. 세계 점유율 4%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이어 2007년 3위에 오르고 지난해 점유율 10%를 넘기면서 확고하게 3위 자리를 굳혔습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연평균 18% 성장한 디지털 시장에서 연평균 54%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이 추세라면 2012년 세계 수위도 가능합니다.”
올해 삼성은 디지털카메라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부터 뜯어고쳤다. 기존에 삼성테크윈에 소속돼 있던 카메라 사업 부문을 떼 내 삼성디지털이미징이라는 별도 회사를 설립했다. 전자 산업 핵심인 ‘속도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방위·기계 산업이 중심인 삼성테크윈과 다른 사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협력 수위도 더욱 높였다. 박상진 대표는 삼성디지털이미징을 책임지면서 삼성전자 캠코더 사업부장까지 겸하고 있다. 독립법인이지만 시너지를 위해 이미 일부 생산라인은 통합했다. 국내를 포함한 해외 각 지역의 마케팅과 영업은 전자와 긴밀하게 협조 중이다.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판매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카메라는 반도체에서 TV·캠코더·PC·멀티미디어 단말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기술과 경쟁력을 활용할 때 시너지를 높일 수 있습니다.”
박 대표는 “삼성전자와 협업 마케팅을 통해 2012년 1위 캐논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며 “삼성 카메라 르네상스 시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