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코·주니퍼 대형 프로젝트 라이벌전

 영원한 라이벌 시스코와 주니퍼가 대규모 수주전에서 ‘1진 1퇴’의 공방을 벌였다.

 경기침체 이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대규모 입찰에서 또 다시 맞수 본능을 드러낸 것이다.

 최근 진행된 KT와 우리투자증권 프로젝트에서 벌어진 전통의 라이벌 간 대결은 각각의 텃밭은 지킨 반면 적진 공략에는 실패했다.

 ◇막판까지 혼전=시스코는 지난 주 상암동 DMC로 이전하는 우리투자증권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장비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이전 비용만 200억원, 네트워크 이전과 인프라 구축까지 더하면 5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네트워크 장비만 60억원 규모다. 일반 기업용 시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대형 프로젝트였다.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이 벌어져 최종 수주업체를 예측하지 못할 만큼 치열했다.

 반면 주니퍼는 비슷한 시기에 KT의 백본급 라우터 ‘T1600’ 6대를 수주했다. T1600은 주니퍼 제품 중 최대 용량을 자랑하는 테라급 라우터다. 대당 가격이 10억원에 육박하는 장비다. 이 역시 시스코와의 막판 가격 경쟁이 붙었지만, 최근 통신사업자 시장에서 더 큰 역량을 보이고 있는 주니퍼가 최종 수주했다.

 ◇텃밭 수호, 공략에는 실패=우리투자증권과 KT 등 2개 프로젝트는 금액도 약 60억원 수준이다. 각자의 텃밭인 금융권과 KT 백본을 지켜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시스코는 그 동안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금융권에서 경쟁자가 거의 없는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 하지만 통신시장에서 실력을 쌓은 주니퍼가 기업시장까지 진출하면서 위협을 받아왔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시스코는 주니퍼의 거침없는 행보를 1차 저지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반면 몇 년전 주니퍼에 내줬던 KT 백본의 재탈환을 노린 시스코는 이번에도 고배를 마셨다. 이번에 주니퍼가 공급한 장비는 각 업체의 기술 자존심인 최대 용량 라우터 경쟁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던 프로젝트였다. 각자 자신의 텃밭을 지키는데는 성공했지만, 상대편 시장 공략에는 실패한 셈이다.

 ◇상처 입은 승리=각자 자신의 텃밭은 지켜냈지만 수익성 훼손이라는 만만치 상처도 남았다. 두 회사간의 기술력 차이는 종이 한장 차이. 결국 승부할 수 있는 부분은 가격이다.

 특히 몇 년전 통신시장에서 주니퍼의 추격을 허용했던 시스코의 기업시장 수호 의지는 확고했다. 가격과 장비 사양 등 다양한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주니퍼의 상황도 마찬가지. 이번 KT 프로젝트에서 시스코의 공략을 막기 위해 상당한 출혈을 감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가 붙으면 보이지 않는 많은 요인들이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친다”며 “이번에도 자신들의 시장을 지켜냈지만, 그에 못지않은 출혈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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