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에서 근무하다 모기업으로 전보 배치된 한 개발자가 전해준 얘기다.
모기업은 내로라하는 국내 대기업이어서 이 개발자는 시스템에 대한 기대도 컸다고 한다. 그러나 전 직장인 계열사는 업계 베스트 프랙티스로 평가받는 업무용 시스템을 개발, 운용하고 있었던 데 비해 모기업의 업무 시스템은 오히려 기능이 부족했고 사용 편의성도 떨어졌다.
계열사 시스템에 익숙했던 이 개발자에게 모기업의 업무 시스템은 적잖은 불편함을 줬다. 실망도 따랐고 예전 직장 동료를 만나면 시스템 성능을 비교해가며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부족한 시스템 기능과 불편한 사용환경보다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모기업에서는 단 한 명의 직원도 빠짐없이 그 불편한 시스템을 꼬박꼬박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개발자는 다른 회사에서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시스템에 불편함이 있어도 모든 직원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놀라워했다. 그리고 한 곳을 향하는 단합된 힘이 시스템을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록 속도는 더딜지라도 말이다.
모든 직원들이 새로운 업무 시스템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훌륭한 기능이 아니라 조직의 ‘변화관리’ 능력이다. 비즈니스 혁신과 업무 효율성을 이룬 기업들을 취재하다 보면 담당 임원들은 하나같이 “CEO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같은 말을 기사마다 반복하기 멋쩍을 정도다.
CEO와 현업 임원의 적극적인 주도와 지휘 없이 변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시스템을 제공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손에 익은 이전 업무 방식을 더 선호한다. 잘 만들어진 시스템을 전사적으로 이용하도록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이 변화관리다.
시스템의 올바른 활용에는 하향식(톱다운)과 상향식(보텀업)이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변화관리는 강력한 하향전달식 의지나 강제에 가까운 조직의 엄정한 규칙에 의해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의 전사적 사용이 시스템의 발전을 이끄는 선순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시스템이라도 기업의 전사적인 활용도의 차이가 차기 시스템의 발전 수준을 좌우한다. 또 CEO가 누구냐에 따라 시스템 활용 수준과 시스템 고도화 정도가 큰 차이를 보인다. 국내 최고 제조기업 중 하나인 이 모기업의 경쟁력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불경기에 위축됐던 기업들의 투자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장밋빛 뉴스가 들린다. 비용 절감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IT 부문도 허리띠를 졸라매 왔지만 이제 IT를 통해 진정한 비즈니스 효용성을 창출할 방법을 고민할 때다. 들리는 바로는 이 모기업은 최근 차세대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기업의 전 직원이 사용하고 바로 내가 사용하는 시스템이니 얼마나 큰 관심과 심혈을 기울일까 하는 생각에 남다른 기대를 걸게 된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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