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 반도 북쪽에 위치한 항구 도시 옌타이. 사과와 포도주로 유명한 곳이지만 산둥성 내에서는 칭다오와 함께 가장 큰 공업 도시다. 중국 전역에서 40여개에 불과한 정부 지정 경제개발구 가운데 하나기도 하다. 서울서 제주도보다 가깝다고 하니, 과거부터 한반도와 교역량도 많았을 법하다.
중국 시장 문호 개방 이후 옌타이 경제개발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국내 기업은 다름아닌 옛 대우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지난 1990년대 후반 옌타이를 글로벌 경영의 또 다른 전초 기지로 삼아 이곳에 대우자동차와 대우중공업을 진출시킨다. 김 전 회장은 당시 옌타이시로부터 요지의 땅을 불하받았다. 그룹 사태후 대우차가 GM으로 넘어가면서 지금은 상하이GM으로 이름을 바꿨고, 대우중공업이 분리된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는 지금도 옌타이 경제개발구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10여년이 흐른 지난 8월 말 옌타이시를 찾았다. 과거와 어떤 모습으로 달라졌을까. 지금 옌타이 경제개발구는 주력 산업이 IT로 변신했다. 그 중심에 LG이노텍의 최대 해외 사업장인 옌타이 생산법인이 당당히 서 있었다. 옌타이 도심과 경제개발구를 잇는 베이징대로 인근 7만8000㎡ 용지에 건평 5만3000㎡ 규모. 1·2기 공장과 사무동이 들어서 있다. 바로 인근에 세계 최대 전자위탁생산 업체 ‘폭스콘’의 생산 공장이 베이징대로의 2㎞를 가로지르며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것과 비교하면 외견상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지금 LG이노텍 옌타이 법인은 해외 부품 클러스터의 성공 사례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난 2004년 말 LG이노텍의 100% 단독 투자로 첫 삽을 뜬 뒤 불과 4년 만인 올해 산둥성 3대 기업으로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중국내 200대 기업에 순위를 올리기도 했다. 올해 이곳 옌타이 법인의 예상 매출 규모는 10억달러. 지난 2006년 이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이 무려 60%에 이른다. 현지인을 비롯, 옌타이 현지 법인에서 근무하는 인력도 LG이노텍 전체 임직원수의 40%에 달하는 4280여명이다. 중국내 후이저우·푸저우와 인도네시아, 폴란드 법인을 제치고 벌써 LG이노텍의 최대 해외 생산 거점으로 성장한 것이다.
LG이노텍 옌타이 법인에서 생산하는 품목을 따져보면 벌써부터 글로벌 생산 거점의 면모를 갖췄다는 평가가 절로 나온다. 옌타이 현지 법인의 주 생산 제품은 휴대폰 부품인 TFTLCD 셀과 모듈, 카메라 모듈, 복합 모듈, LCD TV·모니터·노트북PC용 파워 모듈 등이다.
휴대폰의 화질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인 LCD 셀의 경우 옌타이 법인은 지난 수년간 셀 후가공 라인에 적극적인 양산 투자를 단행하며 지금은 1.3∼4인치 제품까지 풀 라인업을 구축했다. 셀 후가공이란 한 장의 큰 유리기판을 에칭·표면처리·증착·액정주입·절단·세정·검사 등의 공정을 거쳐 모바일 기기에 적합한 중소형 LCD 패널을 만드는 과정이다. 지난 2005년 말 월 200만개에 불과했던 셀 생산 능력은 현재 1500만개 수준으로 대폭 늘어났다. 4년 만에 8배 가까이 생산 능력을 끌어올린 셈이다. 맥스캐파 활동을 통해 올 연말까지는 월 1800만개 규모로 더 확대한다는 극한 목표도 추진 중이다. 이 정도면 연간 2억개의 휴대폰 셀을 만들 수 있어 글로벌 시장 점유율 20%에 달하는 수준이다.
공장에서 만난 이건정 옌타이법인장(상무)은 “지금까지 생산 능력 확대와 더불어 셀의 품질 면에서도 샤워링 방식의 에칭 공법이나 낙하시 충격 최소화를 위한 절단면 가공 공법 등 독자적인 생산 기술을 개발하며 최고의 품질을 구현해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LCD 모듈은 셀을 휴대 단말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기판·몰드를 결합한 부품이다. 옌타이 법인은 현재 빠른 응답속도와 저전력, 고해상도를 두루 갖춘 LCD 모듈은 물론 몰드리스 LCD 모듈, 0.69㎜ 초슬림 모듈 등 고부가 부품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제품군을 양산 중이다. 휴대폰 카메라 모듈의 경우 해외 생산법인 가운데는 드물게 이미 200만 화소 이상급 초소형 고부가 제품을 생산해 내고 있다. 복합모듈은 LCD·카메라·PCB 등을 하나로 만든 제품으로, 현재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는 품목이다.
파워 모듈은 이미 옌타이 법인의 주력 생산 제품이다. 현재 전원공급장치와 인버터, 통합파워보드(IPB), 발광다이오드(LED) 드라이버 등 초슬림 LCD TV 및 모니터용 부품을 생산 중이다. 특히 최근에는 환경 규제 추세에 맞춰 브로민과 염소 함유량을 종전보다 30%나 줄인 할로겐 프리 인버터와 대기전력을 80% 가까이 절감한 친환경 PSU에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옌타이 생산법인이 조기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데는 전사적인 경영 혁신 활동 노력이 저변에 있었다. 옌타이 법인은 출범 당시부터 LG그룹 특유의 혁신 프로그램인 ‘해체후재구성(TDR)’ 활동을 일찌감치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유휴 설비·인력을 활용한 맥스캐파 활동으로, 직원 1인당 매출액 25만5000만달러를 달성했다. 현지 외국 기업들에 비해 생산성이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LCD 모듈 사업의 경우 이미 최고 수율을 기록 중인 상황에서 고객사와 공통 TDR 활동을 전개, 기존 공정과 검사 기준을 변경함으로써 석 달 만에 완벽에 가까운 품질을 구현하기도 했다. 올 초부터는 본사와 연계한 글로벌 공급망관리(SCM)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재고 회전 일수와 공급 주기를 종전보다 10% 이상 단축한다는 목표다.
LG이노텍 옌타이 법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나라 현지 부품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는 각오다. 오는 2012년까지 품질과 생산성을 3배 높여 매출액 18억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나아가 오는 2015년께는 연매출 25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부품 EMS 기업으로 키워낸다는 야심찬 구상이다. 이 상무는 “생산은 물론 연구개발(R&D)과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자생력을 갖춘 EMS 전문 회사로 탄생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독자적인 R&D 활동과 해외 부품 수급의 허브 역할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옌타이(중국)=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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