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2009년, 난세가 영웅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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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와 경제는 난세(亂世)였다. 주가와 원화 가치가 폭락하고, 사람들은 떼를 지어 광화문으로 몰려 나왔다. 한 지상파 방송사가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광우병을 들고 나오자, 대한민국은 온통 촛불로 들끓었다. 들불 같았다.

 세계경제가 금융위기로 주저앉고 있을 때, 대한민국은 정치적 문제로 격동에 빠졌다. 나라를 구하겠다던, 살신성인하겠다던 자칭 영웅들도 혼란에 빠졌다. 국민은 경제위기보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자기와 가족의 목숨을 빼앗을지 모르는’ 광우병이 급했다. 신용등급은 하락했고, 제2의 외환위기, L자형 장기 불황설이 난무했다. 전직 대통령은 또다시 비리문제로 검찰청에 불려 다녔고,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사람들은 광화문으로 모였고, 남은 자들은 추도 분위기에서 둘로 갈렸다. 그리고 또 다른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대한민국은 난세였다.

 난세에는 영웅이 태어난다. 기억조차 못하겠지만 2008년 겨울부터 올가을이 오는 동안 무수한 영웅들이 태어났다. 이들은 299명의 국회의원도 아니었고, 127명에 이르는 정부부처의 장차관도 아니었다. 50여명의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도 아니었다. 대통령도 아니었다. 삼국지에서 나오는 맹덕 조조도, 제갈량도 아니었다.

 영웅의 전설은 지난해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12월 LG전자 남용 부회장은 워룸(전쟁상황실)을 만들었다. 준전시상황으로 판단, 글로벌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남 부회장은 전쟁을 이끌었다. 환율, 주가, 원자재를 이곳에서 컨트롤했다.

 삼성전자 최지성 사장도 전쟁을 치렀다. 위기가 올 것에 대비해 이미 CRM을 통해 재고를 줄인데다가, 생산라인을 셀방식으로 변경시켜 전투력을 배가시켜왔던 ‘관리의 삼성’이다. 1월에 임원 200여명을 내보냈다. ‘마른 수건 짜기’와 공격경영이 병행됐다. 내부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줄이는 대신, 해외 마케팅과 투자를 강화하는 전략이었다. 맷집은 자신 있었고, ‘깡’도 있었다. 키몬다가 파산했고, 해외 유력 가전업체들은 휘청거렸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 시기 휴대폰과 LCD TV 등 대부분의 주력제품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소니와 모토로라가 뒤로 처졌다. 난세는 이들에게 ‘100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었다. 남용 부회장과 최지성 사장은 물론이고 고통을 참은 임직원 모두가 영웅으로 태어났다.

 국내 경기 침체로 수요가 일지 않자 중소벤처기업도 해외로 돈벌이에 나섰다. 경기 침체로 외국의 경쟁업체들이 주춤하는 동안 기업들은 외국 바이어를 공략했고, 달러를 벌어들였다. 버티고 주먹을 휘두르다 보니 세계 경쟁업체가 금융위기로 쓰러지는 행운도 이어졌다. 다른 기업도 위기였다. 202개 업체가 금융위기 속에서 1000억원 매출을 돌파하는 일명 ‘벤처 1000억클럽’으로 등극했다. 202명의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2009년 난세에 태어난 영웅은 싸움을 잘하는 장수가 아니다. ‘난세가 기회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 선택과 집중에 능한 장수였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죽음이 눈앞에 있을 때 영웅은 믿음과 꿈과 희망, 그리고 이성을 잃지 않는다. 꿈과 희망과 믿음이 사라진 ‘난세’를 구할 영웅은 그렇게 태어나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