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이 등장한지 170여년이 지나 교통과 통신, 두 산업은 다시 접점을 찾는 모습이다. 그것은 통신로봇이란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가능해졌다.
경기도 일산의 한 영어학원에는 통신로봇을 이용한 원격 영어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원어민 교사가 원격 통신로봇을 통해서 일산의 초등학생들에게 직접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것이다. 로봇의 상단부 모니터에 원어민 강사의 얼굴이 뜬다. 로봇의 동작제어는 필리핀 교사가 키보드를 조정해 전후좌우로 로봇을 움직인다. 학생의 반응을 살피면서 로봇이 강의실 안에서 움직이기에 강사와 학생이 직접 만나는 오프라인 교육환경과 다를 바 없다. 학생들이 로봇교사에 느끼는 호감도와 양방향 학습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초등학생들과 로봇 간의 일대일 회화수업을 보면 실제로 교사에게 개인수업을 받는 모습 그대로다. 원어민 교사(로봇)는 쉬는 시간이 되자 강의실 복도에서 아이들과 장난을 치면서 놀 정도로 실제 대면 접촉과 매우 유사하며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이 학원에서 움직이는 로봇은 분명히 살아있는 교사로 간주되고 학원 내에서 학생들을 통제할 만한 권위를 갖고 있었다. 얼핏 보면 PC기반의 영상 영어교육과 큰 차이가 없는데도 학생들의 태도가 다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그동안 PC모니터 속에 비치는 그림자에 불과했던 원어민 영어강사가 기동성을 갖춘 미디어(로봇)를 통해서 현실의 물리적 공간, 바깥 세상으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자율적 기동성을 갖춘 통신매체란 기존 미디어 시장에서 여지껏 볼 수 없었던 낯선 개념이다. 통신로봇의 기능적 특성을 가장 쉽게 분석해보면 전동바퀴(교통수단) 위에 카메라와 모니터, 무선장치(통신장비)를 얹어놓은 개념이다. 여기서 말하는 로봇통신이란 자율적 기동성을 지닌 양방향 통신서비스를 의미한다. 누군가 원격지의 통신로봇에 접속하면 수신자의 유무에 상관없이 그 장소에 직접 간 것과 유사한 오프라인상의 사회적 활동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로봇통신을 접하는 사용자들의 태도를 살펴보면 한결같이 로봇단말기를 기계가 아닌 사람처럼 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누군가 로봇미디어에 접속하면 주위 사람들은 로봇을 기계가 아닌 살아있는 인격체로 간주한다. 내가 곧 로봇이요 로봇이 나의 분신이다. 따라서 당신이 로봇통신으로 전달하는 결정과 행동은 기존의 어떤 지능형 로봇과도 가치가 차별화된다. 통신용 로봇단말기는 단순한 통신도구를 넘어서 접속자의 분신(유사인격체)이 된다. 전화기를 끊는 것과 달리 통신로봇의 전원을 일방적으로 끄는 것은 접속자의 신체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행위이다. 당신이 멀리 떨어진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라면 굳이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할 필요가 없다. 휴대폰 버튼만 눌러도 충분하다. 그러나 특정한 장소에 있는 복수의 사람과 주변 사물에 대한 종합적 정보를 수집하며 당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려면 현지로 이동해야만 한다. 교통과 통신의 특성을 겸비한 통신로봇은 기존 통신매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교통서비스가 제공하던 공간이동의 효과를 충분히 대체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휴대폰 이후 한국 IT산업의 차세대 먹거리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교통과 통신의 융합이란 새로운 개념에 분명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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