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일본의 변화와 동북아경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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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8월 30일은 21세기 동아시아 역사에 한 전환점으로 기억될 지 모르겠다. 이날 일본은 5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뤘다. 정권 교체는 민주주의 국가에 늘 있는 일인데 일본은 그러하지 못했다. ‘민주주의를 찾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찾는 것과 같다’던 한국도 수 차례 정권을 교체했는데도 말이다. 우리보다 민주적인 나라라는 일본도 이 점에선 공산당 독재국가인 중국과 달라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정권 교체를 놓고 원인 분석이 한창이다. 끊임없는 정치 부패와 지긋지긋한 관료주의는 단골 메뉴다. 역시 핵심은 경제 불만이다. 5.7%라는 최악의 실업률로 대표되듯 일본인의 삶은 너무 팍팍해졌다. 일본인이 그 ‘잃어버린 10년’에도 자민당의 집권을 허용했던 것은 정권 교체가 자칫 경제를 더 악화시킨다는 불안 심리가 작용했을 뿐이다. ‘지겹다, 갈아보자’는 집단 심리가 일본 열도를 삼켰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일본이 갑자기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랜 정치 구습과 체제를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다만, 확실한 것은 대외정책, 특히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바뀔 것이라는 점이다. 적어도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으로 쓸데없이 이웃나라를 자극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이날 총선을 동아시아 역사의 분수령으로 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은 상반기 독일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수출국가가 됐다. 2015년께엔 중국 제조업이 미국을 제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2050년께로 예상했던 중국의 세계 1위 경제대국 등극 시점도 한결 더 앞당겨질 전망이다. 중국은 이를 위해 미국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한다.

동북아시아엔 중국은 물론 여전히 경제대국인 일본, 글로벌 불황 속에 선전하는 한국, 세계 제조업의 또 다른 부심인 대만이 있다. 동북아경제는 이미 세계 경제, 특히 세계 첨단산업을 쥐락펴락한다. 그렇지만 이들 국가는 서로 반목과 갈등을 거듭하면서 제 위상을 찾지 못했다. 과거의 역사가, 동아시아 경제 주도권 다툼이 동아시아 국가간 협력에 발목을 잡았다. 최근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차이나 양안 관계는 첨단기술산업에서 협력할 정도로 급속도로 개선됐다. 일본도 서구만 짝사랑하면서 무시했던 ‘아시아적 가치’에 눈을 돌린다. ‘8·30 총선’은 이 변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우리나라만 무풍지대다. 현 정권 집권 후 내부 갈등은 심화했으며, 남북 관계는 되레 뒷걸음질 쳤다. 다행히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직원 석방에 이어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연안호 선원 석방 등 남북 관계가 개선될 조짐이 보인다.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일단 정치 갈등은 식었다. 이 정도론 터무니없는 변화다. 더욱 더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바뀌지 않을 때에 바깥 나라도 그렇다면 상관이 없지만 이미 밖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정치 시즌이 왔다. 여야가 올 정기국회에 협력을 다짐했지만 개헌, 선거제·행정 구역 개편과 같은 예민한 현안으로 과거와 같은 파란이 예상된다. 이번만큼 달라져야 한다. 바깥 나라들은 초고속으로 변화하는데 우리만 다이얼업 모뎀 수준일 수 없다. 코리아의 역동성에 늘 걸림돌이었던 정치를 하루빨리 환골탈태시켜야 한다. 오매불망 기다린 동북아경제시대가 정작 다가왔는데, 우리만 먼저 탈락하지 않으려면….    

신화수 취재담당 부국장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