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님은 떠났지만 고귀한 정신은 남았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민족의 큰 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영영 이별하는 날. 국회 광장에 모인 2만여 조문객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선생님이 계셔서 희망을 놓지 않았은데 우리 곁을 떠나신다니 승복하기 어렵습니다”라는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의 애절한 추도사가 울려 퍼지자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쏟아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은 23일 오후 2시 국회에서 발인과 영결식을 시작으로 운구의식, 안장식 순으로 진행됐다.

 영결식은 이희호 여사를 포함한 유가족과 이명박 대통령 내외, 김영삼 전 대통령, 3부 요인과 헌법기관장, 주한 외교사절, 각계 대표와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특히 정부와 유가족이 추천한 2만여 인사가 식장을 가득 메우면서 영결식은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 탕자쉬안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 등 11개국의 조문사절단도 참석, 전세계가 슬픔을 나눴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조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님은 평생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민족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해 오셨다. 이러한 발자취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 이후에는 고인의 행적을 기리는 생전 영상이 방영되는 가운데 헌화와 추모공연이 이어졌다.

 김영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평화방송 어린이합창단이 코리아심포니오케스트라 반주 속에 ‘그대 있음에’ ‘우리의 소원’을 부른 뒤 육·해·공군 조총대원들이 21발의 조총을 발사하는 것을 끝으로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영결식이 끝난 후 진행된 운구 대열에서도 마지막 배웅을 나온 시민들의 흐느낌이 끊이지 않았다. 행렬은 가로 5m, 세로 3m 크기의 대형 태극기를 실은 캐딜락 오픈카가 앞장서고 그 뒤를 영정 차량과 영구차, 유가족과 측근들이 탄 승용차 20여대가 뒤따랐다.

 고인의 영정은 민주당사를 지나 동교동 사저 1층 접객실과 2층 서재, 투석실 등을 천천히 둘러봤다. 이어 사저 바로 옆 김대중도서관에서 1층 전시실과 2층 자료실, 5층 집무실도 마지막으로 방문했다.

 이희호 여사는 서울광장에서 대국민 인사말을 통해 “제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와 국장 기간에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남편이 추구한 화해와 용서의 정신, 평화와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라고 힘줘 말했다.

 광화문 세종로사거리, 서울광장, 서울역광장을 거쳐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고인과 이별을 못내 아쉬워하는 수 만명의 추모 인파가 운구차를 따라 물결쳤다.

 서울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은 국가유공자 제1묘역 하단부에 봉분과 비석, 상석, 추모비 등을 합해 264㎡(16ⅹ16.5m, 80여평) 규모로 조성됐다. 묘역 주변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다.

 종교의식과 헌화, 분향, 하관이 진행된 뒤 가족들이 흙을 관에 뿌리는 허토 의식이 이어졌다. 허토에는 김 전 대통령의 고향 하의도에서 가져온 흙도 함께 사용됐다. 대통령의 이름과 호, 성장과정 및 정치역정이 적힌 지석을 덮은 후 의장대 조총의식을 마지막으로 안장식이 끝났다. 이희호 여사와 장남 홍일씨 등 유가족은 안장식 내내 눈물과 비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광장 분향소에는 밤 늦은 시간까지 애도와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장지영·허정윤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