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세상읽기] 신들의 사회

 ‘신들의 사회’는 로저 젤라즈니의 대표작으로 1968년 휴고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신으로 군림하며 자신들의 후손을 지배하는 이들에 대항해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려 한 영웅에 대한 서사시다. 또 힌두 신화와 불교, 인도 베다 철학과 과학을 교묘하게 접합시킨 묘한 작품이기도 하다.

 고향 행성 ‘우라스’를 떠나와 먼 행성에 정착한 인간 중 일부는 자신이 갖고 있던 유전적 돌연변이 능력을 강화, 자신의 ‘속성’으로 삼고 신과 같은 존재가 됐다. 이들 ‘제1세대’는 힌두교의 지배 체제를 받아들여, 그들 자신이 힌두교에 존재하는 ‘신’이 됐고, 탈출선의 승객이자 그들의 자손인 일반 민중 위에 군림하게 된다. 신들은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를 도입하고 환생 장치를 장악해 일반 ‘인간’을 완전히 통제한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과학의 결실을 그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촉진주의자’들이 있었고, 그 거두가 ‘마하사마트만(Mahasamatman), 또는 붓다, 정각자, 악마의 구속자, 빛의 왕, 또는 간단히 샘이라고 불리는 남자’다. 그는 수차례에 걸쳐 하늘에 도전한다. 금지된 과거의 지식인 불교는 그의 사상적 무기이자 프로파간다다.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그가 구속했던 악마의 힘을 빌려,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하고 ‘태양마저도 눈을 돌릴 처참한 전투’를 치러가면서.

 ‘신들의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힌두 신화는 흔히 알려진 그리스-로마 신화 등과는 달리 매우 복합적이고 모호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힌두의 신들은 다양한 면모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극단적인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도 하다. 젤라즈니는 이런 힌두 신화공간의 모호성을 ‘제1세대’의 모호한 정체성이란 형태로 잘 그려냈다. 그들은 수많은 삶을 살았고, 한 세기에도 몇 번씩 몸을 바꿔가며 ‘모든 생의 혼합인 동시에 항상 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힌두 신들처럼 상반되는 상을 모두 지닌 신들도 있다. 또 화신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는 힌두의 신들처럼, 그들끼리도 필요하다면 다른 신들로 전생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이루어지는 힌두 신화 공간의 재현은 이뿐만이 아니다. 내용의 전개와 인물 간의 관계도 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많다. 힌두 신화에 따르면 우주의 본질적인 환상성은 바로 ‘마야’라는 속성으로 요약된다. 환영이란 뜻을 가진 마야는 환영을 창조하는 힘과, 자신을 드러내는 가상 둘 모두와 관련이 있다. 이 매혹을 깨고 세상의 본질을 드러내 주는 것이 바로 ‘마이트레야(샘)’인 것이다. 고비 때마다 나타나 샘의 앞길을 결정적으로 가로막는 신은 마라인데, 마라의 속성은 환영 그 자체다. 샘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 마야의 힘인 것이다. 샘은 번번이 마라에게 패배하고 그의 뜻은 좌절된다. 이는 은유적으로 샘이 진정한 정각자가 아니고 그 자신의 말처럼 협잡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환신 마라는 죽음의 신인 야마-다르마에게 진정한 죽음을 맞이한다. 마야의 속성을 가진 마라가 죽음에 의해 제거되면서 법(다르마)이 명확히 드러난다. 다르마를 드러내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은 죽음·해탈만이 마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임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주인공의 행보 역시 본인 스스로 인정하는 것처럼 협잡꾼에 지략가긴 하지만 붓다의 행로를 최소한 외형이라도 따라가는 길이다. 특히 샘의 전략은 초기 불교의 등장을 떠올리게 한다. 불교가 열렸을 당시의 인도 사회는 힌두교가 지배하고 있었고, 기존의 권위와 카스트제도를 바탕으로 한 지배 계층이 원주민인 드라비다족과 하층민을 지배하고 있었다. 붓다는 이런 권위에 대항하고 인간의 평등한 구원(구원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힘을 바탕으로 한 해탈-깨달음)을 주창했던 ‘프로테스탄트’였던 것이다. 따라서 샘은 그야말로 붓다와 불교를 집대성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신들의 사회’는 방대한 힌두 신화를 과학과 결합해 소설로 창조해낸 걸작 중의 걸작이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글을 기회로 한번쯤 볼 것을 권한다. 한 번 보았던 사람이라도 이 소설은 여러 번 볼 가치가 있으므로 새로운 시각에서 한번 더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홍인수 SF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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