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할 말 많은 출연연

 최근 우리나라 첫 발사체 나로호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들 사이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다름 아닌 상급기관 보고서 작성 업무 때문이다.

 “우리가 무슨 보고서 만들어내는 기계입니까? 나로호에 모두 올인해도 될까말까인데, 윗사람들 회의자료 만들어야 하고, 고위직 현장온다고 시찰용 보고서 작성하다 하루를 다 보내야 하니….”

 항우연 연구원들이 내뱉는 하소연이다.

 ETRI의 한 연구원은 “열정을 갖고 일할 시스템이 망가지고 있다. 비전 없고, 희망 없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래선 안 된다”는 푸념을 입에 아주 달고 지낸다.

 대덕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는 K 박사는 요즘 공부 중인 딸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혀를 내두르고 있다. 서른 살을 훌쩍 넘긴 과년한 딸이 이공계는 비전 없다고 고시준비만 몇 년째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한국 과학기술계의 현실을 단면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출연연의 기초과학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교육 부문에 밀려 한쪽으로 비켜나 있고, 응용 분야와 상용화 부문은 지식경제부에선 규모 큰 공기관이 워낙 많아 ‘천대’받기 일쑤다.

 이같이 출연연이 정부의 ‘서자’로 전락해 각종 정책에서 소외받고 정책 부문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이유에 대해 과학기술계는 보호막이 됐던 과학기술부나 정보통신부가 없어진데다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시스템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돼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각종 공청회나 세미나에서 대우받는 건 교수나 관료, 정치인이다. 현장 연구원의 이야기는 패널리스트가 던지는 참고자료나 문제제기 정도일 뿐이다”는 연구원들의 푸념도 새겨들을 만하다.

 실제로 과학기술계에서 정계에 진출한 현직 국회의원은 고작 서너 명에 불과하다. 관직에서도 마찬가지다. 고위공무원단에 이름을 올린 출연연 출신 박사는 몇 안 된다. 과학기술계 전문 관료는 행정고시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심지어 출연연 기관장도 최근에는 대학교수 아니면 안 되는 판이 됐다. 최근 출범한 연구기관에는 새로 구성한 경영진의 절반 이상이 교수로 채워져 있다.

 사실 교수직은 과기계 연구원들에게 직업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측면에서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같이 일해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은 어째서 모두가 연구중심대학입니까. 산업마다 고급인력이 필요한 곳이 있고, 숙련된 기능공이 필요한 분야도 있는데, 정부의 사업예산은 그런 내용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정책이 가져온 폐해를 지적하는 출연연 연구원의 말에 그동안 드러내지 않던 소외감마저 묻어난다. 모두가 정부 정책결정 시스템에서 출연연이 배제돼 있기 때문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젠 출연연도 남 탓만 할때는 아니다. 자생력을 갖춰 나름대로의 방패를 들고 전장으로 뛰어나갈 채비를 서둘러야 한다. 매번 우리 실험실이 열악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러한 군색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실력으로 승부를 던져야 한다. 서로를 헐뜯고, 투서하는 일 이제 그만하자.

 “대학은 수백조원을 쏟아부어 인력이라도 양성했지, 출연연은 수십조원으로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말이 더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박희범 전국취재팀장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