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경영방식 바꾸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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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 굿윈 시스코시스템스 수석임원은 최근 해외 고객 미팅을 위한 출장을 절반으로 줄였다. 그가 속한 소규모 전략수립위원회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서다. 시스코 내부에 이 같은 ‘위원회(committee)’가 59개나 있다. 모두 새로운 혁신 실험에 한창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기업들이 불황 극복의 열쇠로 너도나도 ‘혁신’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무작정 바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국내외 대표 기업들이 최근 슬림화와 구조조정과 같은 ‘낡은 혁신’을 버리고 ‘창의적인 혁신’에 골몰하고 있다.

 과거 성공한 경영 모델을 과감히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출발하는 ‘트랜스포머형’부터 기업의 고질적 문제점과 신사업 아이디어를 내외부로부터 200% 흡수하는 ‘오픈마인드형’과 ‘콘테스트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를 한다.

 시스코는 최근 기존 수직적인 ‘톱다운’ 방식을 포기했다. 소규모 워킹그룹부터 47개 이사회(board), 12개 협의회(council), 운영위원회(committee)를 거치는 수평적 경영 시스템을 도입해 경영 방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2007년 단 두 개에 불과했던 사업 영역을 현재 26개까지 대폭 늘린 데 이어 내년까지 이를 50개로 두 배 가까이 확장하기 위해서다. 최근 국내에서도 KT가 ‘사명만 빼고 다 바꾼다’는 모토 아래 역발상 경영을 중심으로 하는 ‘올레 경영’을 발표하면서 제2 창업을 선언했다.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아이디어 풀을 극대화한다는 방침 아래 내외부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하는 것도 불황기에 적합한 혁신 모델로 부상했다. 구글은 최근 말단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종종 빛을 못 보고 사장된다는 문제 의식 아래 에릭 슈미트 CEO,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에게 사업 아이디어를 직접 보고하는 ‘혁신 리뷰 회의’를 시작했다. ‘혁신’ 제품 구상을 위해 조직원들끼리 종적·횡적으로 아이디어 회의를 거듭하는 애플의 사례와 맥을 같이한다.

“혁신 기업은 개방형 조직”이라며 ‘오픈 경영’을 강조하면서 상반기에만 무려 730개의 혁신 TF를 운용한 LG전자나 일반 직원의 아이디어 보고서를 CEO가 직접 챙기는 SK텔레콤 사례와도 맞닿았다.

아예 현상금을 내걸고 아이디어를 끌어모아 회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도 각광받는다. 온라인 DVD 대여 업체인 넷플릭스는 최근 영화 대여 소프트웨어 개선을 위한 100만달러짜리 공모전으로 큰 화제를 일으켰다. ‘도전’ 과제를 모아 투자자를 모으는 ‘챌린지포스트’ 사이트는 지난 6월 문을 연 뒤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과감한 실험이 부담스러운 기업들은 ‘벤치마킹’과 ‘아웃소싱’과 같은 전통 기법을 여전히 선호한다. 그러나 무조건 조직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프린트넥스텔 등 미 주요 이동통신사들은 휴대폰 매출이 줄어들자 틈새 고객 발굴과 지원을 위한 조직의 직접 구성을 포기하고 이를 외부에 아웃소싱하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스프린트는 글로벌 휴대폰 유통 전문업체인 브라이트포인트에 단순 휴대폰 유통뿐 아니라 군대 등 틈새 시장에 대한 휴대폰 보급과 키오스크 관리, 고객 계정 활성화 등을 맡겼다. 도시바·에이서 등은 최근 주력 제품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이는 대신 각각 사회간접자본·e북 등으로 무게중심을 옮긴다고 밝혔다.

‘벤치마킹’형 기업들은 경쟁사의 실패와 성공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위험 요소를 최소화한다. e베이의 존 도너휴 CEO는 회사의 간판 이미지인 ‘경매’를 축소하고 아마존닷컴이 재미를 본 ‘정찰제’로 고개를 돌렸다. 세계적 커피 전문 체인인 스타벅스도 최근 스콧 헤이든 부사장의 진두 지휘 아래 도요타식 경영방식인 ‘린(Lean, 생산부터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 방식을 현장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