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BIZ+] 금융업계에서 다시 부는 CRM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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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금융권에서 유명무실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던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이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보험업법 개정 등 금융권 법·제도의 급격한 변화로 금융업종별 ‘칸막이 영업’이 사라지면서 금융권 전체가 무한경쟁을 헤쳐나갈 ‘무기’로 고객관리 역량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더 복잡한 상품을 적시에 개발해야 한다. 무한 판매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고객 서비스를 더 고도화해야 한다. 좀 더 세밀하면서도 정확한 고객 분석이 필요하다. 게다가 고객과 접점에 있는 다양한 현업부서들이 필요로 하는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 당연히 데이터베이스(DB)마케팅 수준에 불과했던 기존 CRM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CRM 시스템에 접근 방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에서 다시 CRM 열풍이 분 것은 은행부터 시작됐다. 펀드와 보험 상품 판매 등의 업무가 확대되면서 좀 더 다차원적인 고객 분석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업 담당자들의 요구로 통합CRM을 구축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CRM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어 증권사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기존 위탁매매 중심의 업무 환경 때와 달리 CRM의 비중이 더욱 커진 것이다. 단순 상품 판매 목적이 아닌 고객 자산관리 컨설팅을 지원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로 CRM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증권사는 현업 담당자 입장에서 보다 더 효율적으로 고객의 자산관리 컨설팅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분석CRM보다 운영CRM에 더 무게를 두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보험업계도 다른 금융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기는 했지만 보험상품의 개발과 판매 분리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 변화에 맞춰 고도화된 CRM 시스템 구축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재구축을 검토 중이다.

 

 ◇“더 정밀한 고객관리 필요”=금융권에서 CRM이 다시 부각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보다 높은 수준의 ‘고객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이후 다양한 금융 상품의 출현으로 금융회사간 경쟁이 보다 격화됐고, 그만큼 고객 관리가 기업 생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해졌다. 여기에 강화된 투자자 보호 정책이 시행되면서 고객의 성향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해졌다.

 이정민 대우증권 상무(CIO)는 “고객가치 극대화를 통한 생존전략의 구사 과정에서 고객을 새로운 틀로 정의할 필요가 높아졌다”며 “과거에 비해 더 방대하면서도 통합적으로 관리된 고객정보가 요구되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CRM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구축, 운영에 관한 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설계상의 한계, 시스템의 유지 운영을 위한 노력과 체계의 부족, CRM 솔루션 공급자 중심의 프로젝트 진행 등의 문제로 인해 구축된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사용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들어 CRM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로 정보를 취득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술이 높아진 점을 들고 있다. 또 기존에는 CRM을 단순 IT 시스템이라 생각했지만 최근 들어 타깃 고객에게 차별화된 마케팅을 하는 경영 기법으로 재인식하게 되면서 시장 활성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고객정책, 영업정책, 성과평가 등 회사의 전체적인 운영 흐름이 CRM적인 관점으로 방향이 설정되고 진행돼야 한다”며 “궁극적으로 CRM은 회사의 경영 전반에 반영돼야지만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 통합CRM 재조명의 일등공신=은행권이 기존 CRM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깨닫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 중반부터다. 당시 은행들은 무리하게 영업점을 확대하면서 경쟁 환경이 치열해졌다. 은행 상품이 다양해지기 시작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방카슈랑스를 통한 보험 판매는 물론, 펀드 판매까지 이뤄지기 시작하면서 보다 다차원적인 고객 분석이 필요했다. 그러나 기존의 CRM 시스템으로는 고객 대응이 불가능했다.

 기존 CRM 시스템은 대부분이 패키지 솔루션 기반으로 구축돼 있어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고객 분석이 세분화되면서 더욱 빠른 분석이 요구됐지만, 기존 시스템으로는 이를 지원해주지 못했다. 더욱이 과거 CRM 시스템들은 대부분 IT관점에서 구축되다 보니 사용자 편리성이 많이 뒤떨어졌다. 자연스럽게 사용자의 활용도도 낮았다.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앞다퉈 통합 CRM 구축을 추진했던 은행권은 2007년이 후 CRM 활용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활동을 추가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국민은행은 앞서 구축된 통합CRM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전사적데이터웨어하우스(EDW)를 구축한데 이어 최근에는 지주 차원에서 계열사의 고객정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그룹CRM마트 구축을 착수했다. 하반기에 그룹CRM마트가 가동되면 계열사별로 운영 중인 우대고객 제도 등 다양한 고객 서비스를 하나로 통합해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지난 2007년부터 현업 주도의 통합CRM 시스템을 전면 재구축했다. 지난해 말에 가동된 우리은행 CRM시스템은 기존의 패키지 솔루션을 걷어내고 필요한 기능만 구현하는 방식으로 자체개발했다. 하나은행도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존 패키지 솔루션 기반의 CRM시스템을 자체개발로 전면 재구축했다. 시스템의 유연성을 강화한 것이다. 이외에 외환은행, 농협 등도 모두 CRM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단행했다.

 최근에는 국민, 하나은행을 중심으로 지리정보를 활용한 G-CRM시스템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이를 통해 영업점별 차별화된 마케팅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G-CRM은 영업점 주변의 아파트나 상가 거주 고객에 대한 각종 정보 및 거래현황을 각 호수별로 분석해 줄 수 있다. 현재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도 G-CRM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은행들이 앞다퉈 CRM 시스템 개선작업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도 행장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정원 국민은행 행장, 김정태 하나은행 행장 등 각 은행의 행장들은 여러 차례 CRM 활용도에 대한 중요성을 사내 방송을 통해 역설하기도 했다.

 ◇증권, 자산관리 컨설팅 툴로 CRM 주목=증권업계는 자통법이 CRM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기존 위탁매매 중심의 업무에서는 CRM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자본시장통합법이 발효되면서 CRM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증권사는 이제 단순히 투자 상품이나 금융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고객의 자산관리를 위한 컨설팅 중심의 영업력이 보다 중요해졌다. 또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다양한 크로스 오버 상품이 출현함에 따라 영업 담당자들에게도 새로운 방식의 영업 형태가 요구되고 있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금융환경으로 바뀌면서 고객의 성향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이 경쟁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1금융권과의 경쟁을 위한 마케팅 전략 수립에도 CRM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증권사들은 단순히 개별적인 투자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자산관리를 위한 컨설팅 중심의 영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CRM에 주목하고 있다.

 이정민 대우증권 상무는 “기존 CRM에서 제공하는 고객 정보 수준을 넘어 실시간 투자 현황과 성과 등도 통합 분석하고 있다”며 “고객에게 제시할 맞춤형 포트폴리오 등을 한 화면에서 통합적으로 파악해 고객별 종합적인 맞춤 컨설팅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우증권은 지난해 통합CRM을 재구축했으며, 현재 CRM 시스템의 활용도를 높이고 영업점에서 자체 타깃 마케팅과 프로모션이 가능하도록 사용자 위주의 시스템으로 개선하고 있다.

 하나대투증권도 최근 기존 CRM관련 인프라를 기반으로 마케팅에 보다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 작업에 들어갔다. 강호석 하나대투증권 시스템지원부 차장은 “올해 하반기 시행 예정인 펀드판매사 이동제도 등 고객확보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데 CRM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시스템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증권도 지난해까지 고객관련 데이터를 재정비하고 고객분석작업을 위한 기반을 재구축했다. 올해부터는 투자 및 재무설계 툴을 제공해 보다 진화된 고객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김병철 대신증권 상무는 “CRM 시스템은 영업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시스템화돼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향후 회사의 영업 전략과 연결되고 직원에 대한 성과평가와 인센티브 제도와도 같이 연계돼야 생존력 있는 CRM시스템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신 고객 정보를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계 시스템과 CRM 시스템을 통합한 곳도 있다. 신영증권이 대표적인 사례로 차세대 시스템 개발을 추진하면서 함께 진행했다.

 신영증권은 고객 접촉채널의 고객정보를 모두 통합해, 수많은 채널에서 동일하게 고객 정보와 접촉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싱글 뷰(Single View)를 제공한다. 이 회사는 자사 핵심 영업 담당자들을 시스템 개발 단계에 참여시켜 이들의 노하우를 CRM의 주요 서비스에 적용했다. 특히 영업 표준 활동 모델이라는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철저하게 영업 활동 중심의 CRM을 만들어 관심을 끌었다.

 김병철 대신증권 상무는 “CRM 시스템은 영업정책의 필요성에 의해 자연 발생적으로 시스템화돼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향후 회사의 영업 전략과 연결되고 직원에 대한 성과평가와 인센티브 제도와도 같이 연계돼야 생존력 있는 CRM시스템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구축 논의 활발한 보험업계=보험사들도 2000년 들어 CRM 시스템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CRM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목적 없이 구축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더욱이 CRM 시스템을 주도한 부서가 IT부서여서 실제적인 현업의 활용 측면을 고려하지 못했다.

 이는 보험사들이 CRM시스템에 대한 활용을 데이터베이스(DB)마케팅 정도인 초보적인 수준으로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험업계에서는 CRM에 대한 투자대비효과(ROI)가 낮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시된다.

 그러나 보험업법 개정 등이 이뤄지면 보험사도 현재보다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취급하게 되는 것은 물론, 경쟁 환경 자체가 급변하게 된다. 우선 소액결제서비스가 가능해지게 되면 보험사도 고객의 잔고를 보유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보다 개인화된 상품이 필요하다. 개인화된 상품 개발과 판매를 위해서는 현재보다 고도화된 CRM 시스템 구축이 불가피하다. 현재의 CRM으로는 더 이상 급변하는 보험업계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판매전문회사 활성화도 보험사들이 CRM시스템을 고도화하는 이유 중 하나다. 판매전문회사가 활성화되면 보험사는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상품개발 환경에 놓이게 된다. 어느 상품이 어느 고객에게 더 적합한지를 알기 위해서는 고도화된 분석이 필요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CRM 시스템으로 어렵다.

 이런 점들 때문에 삼성생명, 대한생명, 메리츠화재 등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계획 중인 보험사를 중심으로 CRM 시스템에 대한 전면 재구축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보험사들이 기존에 흩어져 있던 CRM 시스템을 한 곳에 모으는 통합CRM시스템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은행보다 약 4∼5년 정도 늦은 셈이다. 앞서 금호생명은 CRM 시스템을 전면 재구축했다. 지난 2007년 4월 가동한 금호생명 CRM시스템은 영업 과정의 6단계를 자동화시켜 영업기회 프로세스를 관리할 수 있도록 구축됐다.

 보험업계 한 최고정보책임자(CIO)는 “보험업계는 머지 않아 CRM 시스템 재구축에 대한 논의가 업계 전체에 최대 이슈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며 “현재의 CRM시스템으로는 다가올 비즈니스 환경에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혜권기자 성현희기자 hk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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