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유리지갑만 노리는 간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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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 격투기에 밀려나 인기가 시들하지만 한때는 세계를 풍미한 미국 프로레슬링(WWF)이 있다. 출전 선수들은 아메리칸 인디언부터 장의사까지 저마다 독특한 이미지로 포장한다. 본인의 성품과 무관한 일종의 캐릭터로 ‘기믹’이라고 부른다. 어윈 R 시스터(IRS)라는 선수가 있었다. 등장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관객들의 야유를 받는 선수다. 이 선수의 기믹은 ‘악덕 세금 징수원’이다.

 사람들이 세금을 싫어하는 것은 동서고금 마찬가지다. 폭악 정치는 참을 수 있어도 세금 수탈만큼은 참지 못한다. 수많은 민란도 알고 보면 과도한 세금 징수 때문이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세금을 많이 매긴 정권은 늘 인기가 없다. 표가 생명인 정치인들이 세금정책에 신중한 이유다.

 우리나라는 조금 이상하다. 세금정책을 별 다른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한다. 증세든 감세든 불쑥 꺼냈다가 또 불쑥 없앤다. 세제 개선이 미칠 영향과 효과의 심층 분석, 토론 그리고 설득 과정이 별로 없다.

 불황기에는 재정 확대가 불가피하다. 돈을 풀어 수요를 진작시켜야 경기가 산다. 대가가 든다. 재정 적자다. 올해 51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빈 곳간을 메우는 방법은 결국 세금 인상뿐이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왜 세금을 올려야 하는지를 국회와 국민에게 똑바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를 소홀히 하면서 계층 간 불화만 조장한다. 주세와 담뱃세,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 정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소득세와 같은 직접세를 낮추는 대신 이들 간접세를 올리려다가 ‘부자 감세, 서민 증세’라는 반발에 부딪쳤다. 여당까지 유보로 돌아섰다. 사실 국민 건강을 위해 술·담배에 세금을 많이 매길 필요가 있다. 이른바 ‘죄악세’다. 문제는 지금 이러한 정부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이 적다는 점이다. 정부 정책에 신뢰가 떨어진 탓인가 조세 저항이 낮은 간접세로 손쉽게 세수를 늘리겠다는 ‘꼼수’로 보려는 시각이 많다. 부가가치세 인상도 그렇다. 정부는 OECD 국가처럼 소비세의 비중을 높여갈 방침이다. 그런데 OECD 국가 중 간접세가 세수의 절반이 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소비세를 올리면서 동시에 다른 간접세를 낮추겠다면 얘기가 되지만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정부는 대형 TV와 냉장고·에어컨·드럼세탁기 4개 가전제품에 개별소비세 부과를 검토 중이다. 사치품 소비 억제와 에너지 절약이 이유다. 그런데 이 제품들이 과연 사치품인가. 부유층 집에는 이미 다 있고 서민들이 이제 막 장만하려는 품목들이다. 이런 제품에 사치품이란 멍에를 씌운다. 경기 회복에 필요한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는 정부 정책과도 상충한다. 소비 진작을 위해 가전제품보다 더 비싸고 에너지 소비도 큰 자동차에 특소세를 낮춰줬던 정책과의 연결고리를 아무리 찾으려 해도 모르겠다.

 무조건 세금을 올리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필요하면 세금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설득력도 없고 사회정책도 고려하지 않은 증세는 저항만 부른다. 더욱이 우리 사회는 ‘부유층의 탈세로 부족한 세원을 월급쟁이와 같은 유리지갑으로 메운다’는 조세 불평등 논란이 만연한 곳이 아닌가.

 신화수기자@전자신문 hs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