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손가락 꼬리 걸고 꼭꼭 약속해.”
동요의 한 구절이다. 어릴 때 어떤 약속을 하게 되면 으레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냥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그랬다. 새끼손가락을 걸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규약처럼 됐다. 못 미더워서인지 어느 때부터인가 약속의 다짐 방법과 절차가 진화했다. 엄지로 도장을 찍고 손바닥을 맞대고 복사도 했다. 약속에 대한 그 나름의 이중·삼중 잠금장치다.
지난 3월 정치권도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저 당 때문에 못해 먹겠다고 말하지 말자” “날치기 처리하지 말자” 등의 신의 다짐이었다. 하지만 한 달도 못 가서 새끼손가락은 풀리고 엄지 도장도 지워졌다. 어디 정치권만 새끼손가락이 풀렸을까.
요즘 인터넷 쇼핑몰 곳곳이 ‘원치 않는 불협화음’에 시달리며 뒤숭숭하다. 몇 해 전 업계는 ‘출혈경쟁은 수익감소’라는 결과를 낳는다며 상호비방을 하지 않기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이후 시장은 확대됐지만 먹을거리가 부족해지자 헐뜯기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인터넷 쇼핑몰 특성상 온라인이 주요 마케팅 수단인 만큼 악성 댓글이나 영업비방으로 이어졌다. 댓글 아르바이트까지 등장했다. 최근 한 오픈마켓에서 사이버머니가 유출됐다. 간헐적이지만 사이버수사대에 5∼6건이 접수됐다. 사이버수사대는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아직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경쟁사가 흘린 흑색선전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돈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조사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계량화되지 못한 정보가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의 거듭된 습격에 소비자의 판단력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물론 경쟁을 하다 보면 상대방을 헐뜯기도 한다. 하지만 네거티브식 시장 쟁탈전은 소비 진작은 물론이고 국가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내 한 대기업 국내영업사업부도 관계사의 ‘새끼손가락 풀기’에 속병을 앓았다. LCD TV 대형 패널을 공급해주겠다는 약속을 굳게 믿고 집중적으로 마케팅을 진행했지만 아직도 메아리다. 고객은 찾고 있지만 제품이 없어 못 팔고 있다. 이 회사의 LCD TV는 이달 들어 40%가량 매출이 신장했지만 55인치 제품 공급은 아직도 드물게 이뤄진다. 지난달에는 경쟁사와의 판매수량에서 역전현상도 나타났다.
“제품이 있어야 팔지요. 전쟁터에 나가야 하는데 총알이 없어 싸울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현장 영업을 진두지휘하는 고위 임원의 말 속에는 안타까움마저 묻어났다.
관계사 간 내홍이라기보다는 시각차로 여겨진다. 환율상승으로 해외기업에 패널을 공급하는 것이 수익성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수를 방치하기에는 국내 시장은 그리 가볍지 않다. 사고무친의 외로운 신세다.
‘사람은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킬 만한 좋은 기억력을 가져야 한다.’ 독일 철학자 니체가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약속은 미학이다.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계포일낙(季布一諾)’은 지금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세상은 꼬이게 마련이다. 엄지 도장을 찍지 않아도 손바닥으로 복사를 하지 않아도 약속은 지켜질 수 있다. 새끼손가락은 마음이, 혹은 영혼이 통하는 통로기 때문이다.
김동석 생활산업부 차장 d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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