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만화] <끝> `라이파이`의 아버지 김산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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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붓을 들 수 있는 나머지 10년 동안 제 인생의 만화는 아마도 역사화가 되지 않을까요?”

 한국 최초 SF만화인 ‘라이파이(1959년 작)’의 아버지 김산호 화백은 자신의 작품을 주저없이 ‘내 인생의 만화’로 꼽았다. ‘라이파이’와 앞으로 계속 그려낼 ‘한민족 역사 다큐 만화’가 그것이다.

 지난 6일 인터뷰를 위해 용인시 처인구의 자택에서 만난 김 화백의 머리에도 쉰 살 라이파이만큼 하얀 세월의 흐름이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라이파이의 추억과 앞으로 그려낼 한민족의 역사를 말하는 그의 눈은 20대 청년의 눈빛과 다름없었다. 특히 ‘대쥬신제국사’에서 시작된 그의 민족극화 작업을 이야기할 때는 마치 오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담담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그는 “한민족의 역사는 우리 생각보다 강단 있고 힘이 있습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김 화백은 “하지만 이리저리 왜곡되고 일제 사관도 끼어들고 해서 참 나약하게 그려졌어요. 풍채나 표정뿐 아니라 옷차림새 등 제대로 바로잡기 위해 해야 할 작업이 많습니다”고 말했다.

 그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1966년 미국으로 이주하고 나서부터. 뉴욕에서 만화가로 활동하면서도 틈틈이 우리나라 전래동화 속의 도깨비와 귀신 등을 소재로 해 만화를 그렸다. 만화 속 대사와 설명에는 한글과 영어를 모두 담았다.

 김 화백은 “미국에 가서 보니 우리 문화와 민족에 대한 인지가 형편없더군요”라며 “미국 사람이 좋아하는 소재인 유령, 괴물 등의 소재로 한국 문화를 알리기 시작하다 보니 진짜 우리 역사를 그리고 싶은 갈증이 생겼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중국 등 우리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을 돌아다니며 직접 유적지를 방문하고 사료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 1993년 동아출판사에서 역사 다큐멘터리 만화인 ‘대쥬신제국사’를 내기도 했다.

 “내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 그런지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내고 싶었고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그려내고 싶었다”면서 “최근 나오는 드라마 등에서 의복이나 환경 등 내 그림을 많이 보고 따라한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민족역사와 이를 완벽에 가깝게 그려내는 데 심취한 그에게 우리나라 최초 SF 히어로인 라이파이의 귀환에 대해 물었다.

 김 화백은 “라이파이는 추억 속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요”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최근 라이파이는 다시 김 화백 곁으로 살아 돌아왔다. 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 오는 9월 2일까지 ‘라이파이 회고전’을 하는 덕분이다. 가수 최백호·양희은, 만화가 박재동 등 문화계 인사로 결성된 팬클럽도 최근 다시 모여 ‘ㄹ’ 히어로의 부활을 반겼다.

 김 화백은 “반백년 역사 동안 사랑받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이라며 이어 그는 “붓을 잡을 수 있는 시간 동안 우리 민족의 긍지를 살리는 훌륭한 한국인을 그리는 일과 민족사에 몰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현기자 argos@etnews.co.kr

 ◆김산호 화백은?

 1939년 만주 출생. 1952년 부산 피난 당시 부산일보 시사만화가 처음 본 만화다. 이후 1957년 서라벌예대에서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았다. 그의 데뷔는 잡지 ‘만화세계’에 독립군 이야기를 다룬 ‘황혼에 빛난 별’로 이뤄졌다. 이후 ‘전쟁과 평화’ ‘템페스트’ 등 세계 고전을 만화로 그렸다. 이후 1959년 국내 최초 SF 만화인 ‘라이파이’를 그렸다. 이후 1966년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 찰턴 코믹스의 전속작가로 일하며 미국 사회에 한국 만화를 선보였다. 이후 1974년에는 ‘산호그룹’ CEO로 취임해 해상 해저 유람기지인 ‘산호 씨토피아’를 설계했으며 제주도에 해저관광잠수정을 취항하기도 했다. 1993년 귀국해 동아출판사에서 한민족 역사 다큐멘터리 만화 ‘대쥬신제국사’을 냈다. 2008년 정부가 수여하는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9년 현재 용인과 중국에 있는 작업실을 오가며 역사 극화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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