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D과제 도중에라도 과감히 바꾸라.”
정부 연구개발(R&D) 과제 수행 기관이 정부 평가엔 불만을 가지면서도 내부 평가에는 인색하다는 지적에 대해 내려진 처방이다.
3, 5년짜리 프로젝트가 정부 평가로 1년만에 덜컥 중단되는 것도 문제지만, 별 실효성도 없는 과제가 3,5년씩 지속되는 것 또한 수행기관의 관성 문제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임채민 지경부 1차관은 4일 과학기술인 연찬회 ‘정부에 바란다’ 코너에 나와 작심한 듯 정부출연연구소 등 R&D 기관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임 차관은 “과제 선정 때 잡혔던 방향을 스스로 거울에 비춰보면 분명히 느낄 듯도 한 데, 바꾸려고 용기를 내는 수행 기관을 본적이 없다”며 “R&D 주제 자체를 바꾸는 것도 좋고, 세부 수행 과제를 변경해 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소 엄포용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불법무기 소지 자진신고 처럼 해달라”며 R&D 결과의 질 향상을 위해 강력하게 밀어 붙일 것임을 재확인했다.
김중현 교과부 2차관도 R&D 평가에 더욱 엄정한 칼날을 댈 방침임을 내비쳤다.
김 차관은 “(과제 진행을) 중단하고 말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구 집단의 개방된 경쟁을 통해 좀 더 나은 발전으로 나가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며 “한 그룹만 수행기관으로 선정하지 않고, 모든 그룹에 기회를 준 뒤 2,3년 하고 난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는 그룹에 몰아서 진행하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강조했다. 국가 기초기술 R&D에도 상대평가가 더욱 중시될 것이란 복선을 깔고 있다.
그러나 상대평가 및 수행기관 내부 평가 강화가 일률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R&D 현장의 목소리도 높다. 특히 속도전으로 포장된 과제수행 기간 단축과 평가 업적 쌓기를 위한 의도적 떨어뜨리기 관행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기초기술연구회 소속 출연연 관계자는 “정부가 정기 평가에 의해 떨어뜨리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 프로젝트 금액이 낮은 순으로 탈락 순위를 매기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며 “3,5년씩 긴 호흡이 필요한 R&D과제에 대해서도 조급증을 갖고 평가하는 것은 분명히 개선돼야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연구기관장도 “과제 특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평가 방법을 그 특성에 맞게 다르게 적용할 수 있는 툴(방법론)을 명확히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안=이진호·권건호기자 jh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