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의 시네마 읽기] 오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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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한 첫 만남을 시작으로 짜릿한 인연을 위한 탐색전을 벌이는 커플 장혁과 차현정(변혁 감독편), 서로 지켜주지 못할 안타까운 사랑을 해야만 하는 젊은 부부 역할의 김강우와 차수연(허진호 감독편), 우유부단하면서 괴팍한 성격의 영화감독 김수로를 둘러싸고 은밀한 음모를 꾸미는 선배 여배우 역의 배종옥과 신인 여배우 역의 김민선(유영식 감독편), 아내 몰래 애인과 밀회를 즐기다 사고를 당하는 남편 황정민과 그런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하는 아내 엄정화, 그리고 엄정화를 찾아와 기묘한 동거를 제안하는 남편의 애인 김효진(민규동 감독편),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단 하루 동안 아슬아슬한 커플 체인지 게임을 벌이는 세 쌍의 신세대 고등학생 커플 김동욱·이시영, 정의철·신세경, 송중기·이성민(오기환 감독편).

 영화 ‘오감도’는 줄거리 요약만도 A4용지 반 장에 달하는 복잡다단한 작품이다. 다섯 쌍의 연인이 나오니 어련하겠나. 그러나 주제는 간단하다. 오감도가 주장하는 건 다름 아닌 ‘에로스’다. 다섯 명의 감독은 한자리에 모여 전체적인 기획 과정을 거친 후, 각자 자신의 에피소드에 대한 시나리오를 직접 써서 공유하며 다른 감독들의 이야기와 유기적인 에로스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사실 이 영화는 배우도 중요하지만 감독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혁 감독(‘인터뷰’ ‘주홍글씨’), 허진호 감독(‘외출’ ‘행복’), 유영식 감독(‘아나키스트’), 민규동 감독(‘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오기환 감독(‘작업의 정석’ ‘두 사람이다’) 등 중견 감독 다섯 명은 전작에서 살짝 내비쳤던 자신들만의 ‘에로스’를 보는 시선을 이번 영화에서 모두 풀어낸다.

 옴니버스 형식인 이 영화에서 다섯 명은 ‘독수리 오형제’와 같은 장기를 드러낸다. 독립적인 듯하다가도 영화를 위해선 다른 에피소드와의 접신을 시도한다. 자신이 담당한 에피소드에는 캐스팅부터 촬영, 편집까지 본인의 개성과 장점을 십분 살려 혼자 진행하면서도 에피소드 간 이루어지는 배우들의 교차 출연 부분, 에로스라는 주제 속 다양한 이야기 소재 등은 수시로 다른 감독과 소통하며 전체적으로 하나의 잘 짜여진 멀티플롯 구조의 내러티브가 완성됐다. 전작의 분위기와 다섯 명이 만들어가는 신작의 시너지는 오묘하다.

 특히, 이들이 만들어내는 에로스 코드는 독특하다. 계층마다, 나이마다 서로 에로스를 느끼고 향유하는 모습이 다르다. 영화는 이런 복잡한 코드를 잘 정리한다. 다름 아닌 시선으로 말이다. 영화 오감도는 에로스 코드에 매우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한다. 스크린에는 그동안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이른바 ‘색다른 감각의 에로스’가 펼쳐진다. 처음 만난 남녀의 짜릿한 설렘, 부부 간의 안타까운 사랑, 두 여자의 한 남자를 향한 유혹, 두 여자 간의 치명적인 애증, 풋풋한 10대 고교생의 싱그러움 등 어쩌면 에로스라는 단어의 느낌과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소재들은 다섯 명의 감독을 만나면서 무한 세포 분열한다. 이 소재들은 감각적이고 독창적인 에로스에 안착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관객들은 에로스에 새로운 느낌을 가질 것이다. 감독들이 바라는 바다. 이제 더이상 에로스는 몰래 숨어서 보는 음지의 문화가 아니다. 오히려 에로스를 더욱 솔직해지고 다양해진 사랑의 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즐길 필요가 있다고 영화는 몸소 말한다. 에로스를 소비하는 영화 오감도는 우리 안 에로스가 어떤 모습인지에 신선한 화두를 던진다. 그 화두를 거부할 자 있는가. 멀고도 가까운 감정이 에로스다. 오감도는 이런 금기를 말한다.

 한정훈기자 exist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