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 글로벌 스타를 향해] (4부-5)아키텍트를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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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취약한 소프트웨어(SW) 인력 구조를 대대적으로 혁신하기 위해서는 SW 산업의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가르는 것이 될만큼 고급인력 부족-발주 구조-출혈 경쟁 등의 다양한 요소가 얽히고설켜 지금의 SW 산업을 만들었다. 그중 하나를 바로잡는다고 해서 전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없거니와 복잡하게 얽힌 문제 때문에 어느 하나 바로잡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SW 인력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실천해야 할 것들이 있다. 그중 △아키텍트 인재 양성 △공개SW 커뮤니티를 거친 글로벌 인재 양성△잘못된 개발 관행 바로잡기를 대안으로 집중 조명한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A사의 CIO B씨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좀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아키텍트의 도움을 빌리기로 했다.

 국내에는 금융과 접목된 해당 시스템을 꿰뚫는 아키텍트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해외 아키텍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의 몸값(?)은 단 이틀에 5만달러. 한 달만에도 수억원을 벌어들이는 스포츠 스타만큼은 못하지만, 엄청난 금액임에는 틀림없다. B씨는 5만달러를 들여 50만, 500만달러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주변과 다른 임원들의 만류로 인해 성사시키지 못했다.

 이틀에 5만달러나 벌어들일 수 있는 아키텍트는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SW 개발자들의 꿈이 억대 연봉이라면, 이틀에 5만달러를 벌어들이는 수준의 아키텍트는 그 꿈을 충분히 실현하고도 남는 사람이다.

 이를 증명하듯 글로벌 SW 기업들의 아키텍트 사랑은 남다르다. 연매출 10억달러가 넘는 사이베이스의 마케팅총괄책임자(CMO) 라즈 나단 수석부사장은 개발자의 대우를 묻는 질문에 “운영자 이름은 기억 못해도 아키텍트 이름은 다 기억하고 틈나는 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아키텍트는 사이베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었다.

 이제 한국에서도 아키텍트를 SW 산업의 핵심에 두고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인철 삼성SDS 상무는 “시스템이 복잡해지면서 단순하게 표준을 잡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며 “개발하는 사람도 많아 이들을 조정하는 역할도 해야 하기 때문에 시스템 개발에서 아키텍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비용 차이는 엄청나다”고 말했다.

 ◇아키텍트란 누구인가=아키텍트는 SW의 뼈대라고 하는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고급 SW 개발자를 말한다. 주어진 조건에서 가장 빨리,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안정적으로 SW를 개발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스템이 복잡하지 않을 때에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아키텍트가 없어도 개발을 할 수 있었지만,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아키텍트의 영향은 절대적이다.

 송태국 넥스트리 부사장은 “집을 비유해 보면 3만평에 300명 사는 집을 짓는 것은 쉽지만 100평에 300명 사는 집을 만들기는 힘들 것”이라며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 주어진 조건에서 아파트 같은 구조를 생각해낼 텐데 이것이 바로 아키텍트가 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뱅킹 시스템을 만든다고 하면 트랜잭션을 처리하는 방법을 개발해내고 다양한 기능을 만들어내는 것은 개발자가 할 일이다. 투입인력·품질수준·비용 등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은 아키텍트의 몫이다.

 그러나 아키텍트의 역할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아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기 쉽지 않다. 아키텍트가 없더라도 SW의 기본 기능은 구현할 수 있다.

 최성운 명지대 교수는 “아키텍트 역량에 따라 설계의 질이 달라질 수 있는데 아주 나쁜 설계나 좋은 설계나 시스템은 돌아가게 마련인지라 아키텍트 역할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키텍트가 없거나 역량이 떨어지면 사용자가 불편을 느끼고 비용이 엄청나게 불어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키텍트 현황=국내 SW 개발자는 12만5000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8%인 1만명 정도가 SW 아키텍트인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최대 아키텍트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SDS만 해도 아키텍트는 150여명. 전체 직원 8000명 중에서 2% 수준이다. 대형 IT서비스 기업을 모두 합쳐도 500∼600명 선으로, 실제로 전체 산업에서 활동하는 아키텍트는 기껏해야 1000명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아키텍트의 역할로 봤을 때 양성교육과정은 보조적인 역할만을 할 뿐이다. 실질적으로는 필드의 경험으로 양성된다. 특히, 중소기업은 아키텍트 역할을 수행할 기회를 얻기가 힘들며, 그중에서도 중간 규모 이상의 프로젝트에서 아키텍트 역할을 얻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키텍트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돼 있다 보니 아키텍트 수도 적을 수밖에 없다.

 보조적인 역할이라도 할 수 있는 수준을 확보한 교육기관마저 국내에는 별로 없다. 그나마 한국SW기술진흥협회가 최근 아키텍트 과정을 거쳐 600명을 아키텍트로 배출했다. 그러나 실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아키텍트로 될 확률은 10% 정도인 것으로 전망된다.

 최명경 삼성SDS 그룹장은 “삼성만 해도 아키텍트의 커리어가 다들 독특한 편”이라며 “옛날에는 아키텍트라는 개념이 없다 보니 개발자와 품질관리 등등 다양한 사람에게 역할을 주고 아키텍트 조직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이 문제인가=아키텍트는 아키텍처 설계를 주로 해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설계보다는 프레임워크 선정, 솔루션 선정 등의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아키텍트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송태국 넥스트리 부사장은 “아키텍처 설계가 무엇을 하는 일인지 아직 잘 정의되지 않을 정도로 아키텍처 분야가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우선적으로 아키텍처 설계가 무엇을 하는 일인지 정의하고 그에 따라 팀을 구성해 일을 해야 아키텍트 양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아키텍트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도 아키텍트 양성의 걸림돌이다. 아키텍트 직무 단가가 차별화되지 않고서는 훌륭한 아키텍트가 나올 수 없다. 최성운 명지대 교수는 “어찌보면 기술사보다 더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키텍트지만 일반 개발자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에서 개발자 대우는 중급이냐 고급이냐로 나뉘기 때문에 아키텍트 지위에 맞게 대가를 산정하고 싶어도 근거가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표본이 없는 것도 아키텍트 양성에 어려움을 겪게 만드는 요소다. 초급 엔지니어 시절부터 아키텍트 역할이 무엇인지 어떻게 수행하는지 보고 배우고 또 아키텍트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프로젝트 수행 문화는 아키텍트로서 필요한 경험을 충분히 쌓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외국도 아키텍트 양성기관이 많은 것은 아니며 대체로 경험, 도제제도 등으로 기술을 익혀간다.

 ◇‘갑’이 깨우쳐야 갑에 이익이 돌아간다=‘아키텍트’의 역할이 자리를 잡고 국내에도 우수한 아키텍트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갑’이 깨우쳐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시스템을 가장 효율적으로 안전하게 만드는 역할이 아키텍트라면 가장 큰 이익은 발주자, 이른바 ‘갑’이 얻게 마련이다. 아키텍트에게 대가를 제대로 지급하고, 우수한 아키텍트를 프로젝트에 기용하려고 하는 노력을 발주자가 했을 때 아키텍트 중심의 개발 문화가 열릴 수 있다. 사업 대가 기준도 아키텍트를 대우해줄 수 있도록 조정이 필요하다.

 그나마 최근에는 금융권에서 정보시스템을 구축할 때 아키텍트를 요구하고 있다. 금융권의 발주자들은 아키텍트의 중요성을 먼저 깨달은 것이다.

 한인철 삼성SDS 상무는 “금융 쪽에서는 요구사항 자체에 아키텍트를 명시하고 있다”며 “보험이나 금융 분야에 소문난 아키텍트는 우리나라에서도 시간당 100만원을 받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는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고 공공을 비롯한 대부분의 프로젝트에서는 요구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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