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이슈] 명품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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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시장에는 불황이 없다. 아무리 경기가 어려워도 루이비통, 샤넬, 할리 데이비슨 같은 명품을 기다리는 소비자의 행렬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시대를 초월해 가치를 인정받는 명품은 어떻게 탄생하고 유지되는가. 장인의 숨결이 어린 아날로그 명품과 달리 디지털 시대의 명품들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흔히 ‘명품(名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고가의 사치품을 떠올린다. 명품을 정의하는 것은 단순히 가격이 아니다. 소비자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는 것. 지급하는 가격 이상의 실용적 가치와 뚜렷한 상징적 가치를 동시에 주는 것, 이것이 명품이다. 명품 브랜드가 불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도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코드를 갖고 있어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명품이란 다른 소비를 줄여서라도 꼭 갖고 싶은 상품이라고 정의했다.

 컨설팅회사 베인 앤드 컴퍼니는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올해 명품시장이 10% 감소할 것이라는 어두운 예측을 내놨다. 하지만 지난주 모나코에서 열린 ‘럭셔리 정상회의’에 참석한 세계 명품업계 CEO들은 명품 수요가 연말부터 다시 고개를 들 것이라 낙관했다. 영국 명품 브랜드 지미추의 조슈 슐만 CEO는 “제품이 소비자의 마음에 든다면 가격에 상관없이 팔린다.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한 명품의 가치는 지속될 것”이라 자신했다.

 손꼽히는 명품 브랜드는 불황 속에서도 매출을 올리고 승승장구하며 호·불황에 흔들리지 않는 명품의 가치를 뽐내고 있다. 혹자는 명품을 분수에 넘치는 사치풍조를 부추기는 원흉으로 간주하지만 정작 소비자는 명품의 비싼 가격에 거의 불평하지 않는다. 덕분에 의료기기의 명품으로 간주되는 메드트로닉과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는 지난 20년간 단 한 번도 매출이 감소한 적이 없다. 지난해 경제위기 속에서도 명품기업은 영업이익률 20% 이상의 경이적 성과를 거뒀다.

 오토바이 시장에서 할리 데이비슨의 지난해 매출은 59억7100만달러, 영업이익은 11억6600만달러로 영업이익률도 20%에 이른다. 반면에 일본 혼다의 모터사이클 사업부의 영업이익률은 7.1%로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많은 전문가들은 오토바이의 품질수준은 혼다가 더 낫다는 평가를 내리지만 할리 데이비슨을 동경하는 마니아들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명품기업의 조건

 1. 문화자본을 적극 활용하라.

 스위스의 명품 시계회사들은 2차대전 때 조종사들이 착용했던 시계라는 역사적 사실(스토리)을 마케팅에 귀가 닳도록 활용한다. 70년 전에 조종사들이 찼으므로 21세기 소비자도 자동차 한 대 값의 시계가격을 받아들이라는 시대착오적 마케팅 전략은 희한하게도 잘 먹힌다.

 프랑스의 명품 샴페인 동 페리뇽은 18세기 수도사 동 페리뇽이 처음 마시는 순간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다”고 감탄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샴페인의 시초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적 문헌에 전혀 근거가 없고 후세 사람들이 지어냈을 가능성이 높지만 샴페인의 전설로서 매년 동 페리뇽사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준다. 명품이라면 우수한 품질만으로 부족하다. 소비자는 명품에 얽힌 스토리에 더욱 매혹된다. 명품기업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오랜 전통과 품질의 우수성을 알리는 문화자본을 축적하고 알리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다. 명품을 지향하는 한국기업에 가장 아쉬운 점은 우수한 품질에 걸맞은 스토리를 만들고 일관된 디자인 전략을 펼쳐 명품에 얽힌 스토리를 확대 재생산하는 방법을 제대로 모른다는 점이다.

 2. 희소성을 추구하라.

 똑같은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방식으로 명품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대부분 명품업체는 철저한 품질관리를 위해서 수작업으로 소량을 생산하거나 품질유지가 어려우면 시장을 포기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고급와인 로마네 콩티는 포도 작황에 따라서 해마다 생산물량이 들쭉날쭉하며 일정 기준에 못 미치면 아예 생산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프랑스 문화와 영혼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돈 주고도 못 사는 정상의 와인으로 자리 매김했다. 장인 정신을 가지고 철저하게 고객 맞춤형으로 제작된 명품은 희소성을 가지게 된다. 이는 명품이 고가일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이렇게 탄생한 명품은 소비자에게 제품 이상의 가치와 상징을 주기 때문에 소비자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다.

 3. 장인을 대우하고 키우라.

 세계적 명품기업의 장인은 그에 걸맞은 영예로운 직함과 높은 보수를 받는다.

 에르메스는 장인학교 3년을 수료하고 엄격한 도제식 수련생활 2년을 거친 뒤에야 가방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 파리 직업학교 학생들의 꿈은 에르메스의 가죽 장인이 돼 평생 안정된 직장을 갖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벤츠는 3년 반의 기술교육을 받고 마이스터 과정을 수료한 최고의 숙련공에게 마이 바흐의 생산라인을 맡긴다. 스위스 기계식 시계명품도 철저한 장인 정신의 산물이다. 스위스 주 정부는 1824년부터 연간 30명 안팎의 스위스인에게만 입학을 허용하는 제네바 시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장인을 우대하는 풍토는 특히 유럽국가에서 강한데 이 지역 명품브랜드의 주요 배경을 이루고 있다.

 4. 고객과 항상 소통하라.

 명품은 장인 혼자만의 완벽주의를 향한 집념이 아니라 고객과 끊임없는 접촉으로 변화를 거쳐 등장한다. 완벽한 품질에 대한 집착은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수공업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의 성공에 도취해서 지속적 혁신을 게을리하면 명품의 환상은 깨지고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철 지난 재고품만 떠안게 된다. 명품이 시대에 맞춰 변화하면서 전통을 쌓으려면 고객과 지속적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터 사이클의 명품으로 자리 잡은 할리 데이비슨 매장에는 800페이지에 이르는 부품 및 액세서리 관련 카탈로그가 비치돼 있다. 나만의 모터사이클을 갖고 싶어하는 고객의 욕구를 포착해 모터 사이클을 개조하도록 모든 옵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1949년 설립된 메드트로닉은 세계 최초로 심장삽입형 심장박동 조절기 임상 실험에 성공했다. 이 회사의 심장박동 조절기가 명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고객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제품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 회사 사원들은 입사하면서 가장 먼저 병원수술실에서 수술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고객과 호흡함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미 루이비통, 샤넬 등 명품 브랜드는 아이팟보다 비싼 전용 케이스를 내놨다. 젊고 유행에 민감한 IT 제품과 명품은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상당수 아이팟 이용자들이 배보다 큰 배꼽을 사들였다. 일종의 허영이 섞였을지 몰라도 자신의 아이팟은 단순한 IT기기를 넘어 소중한 음악파일과 추억들이 담긴 제품이기에 훨씬 더 비싼 명품 파우치를 서슴지 않고 구매하는 것이다.

 ◇디지털 명품의 조건들

 최근 국내 기업들도 명품 마케팅을 적극 추구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국산 제품 중 명품 반열에 접근한 사례를 살펴보면 서구 브랜드가 장악한 아날로그 명품시장이 아니라 IT 강국답게 첨단 디지털 기기 분야에 몰린 점이 나타난다. 삼성전자는 TV, 휴대폰 등에서 세계 정상의 브랜드 이미지를 갖췄다는 판단하에 독자적인 감성 디자인의 틀을 완성하는 목표를 세웠다. LG전자는 패션계의 명품과 전자제품을 결합한 야심작 ‘프라다폰 2’를 웬만한 봉급 생활자의 한 달 급여와 맞먹는 179만원에 시판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는 프라다와 공동으로 ‘제네시스 프라다’를 만드는 등 제네시스의 명품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명품폰이라는 이름으로 VVIP층을 공략하는 전략을 보면 국산 명품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명품 마케팅에 필수적인 브랜드 고유의 문화자산과 스토리 부족을 아르마니, 프라다 등 해외 명품 브랜드를 차용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때우는 것이다. 지난 1980년대 싸구려 운동화에 나이키 로고만 갖다 붙이고 뿌듯해하던 그때 그 시절을 연상시킨다.

 명품의 이미지를 입혔다고, 가격만 비싸다고 금방 명품대접을 받기에는 역부족이다. 국산 명품폰은 분명히 부유층만 구매할 수 있지만 아직은 다른 소비를 줄여서라도 꼭 갖고 싶은 상품은 아니다. 이것은 품질이 아니라 기업철학과 진정성의 문제다. 국내 기업이 자칭 명품으로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전하고자 하는지 분명하지가 않다. 디지털 기기든지 아날로그 제품이든지 소비자에게 진정한 명품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뚜렷한 기업철학과 디자인, 문화자산, 지속적 혁신을 추구하는 오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기업이 불황을 모르는 명품산업계에 당당히 명함을 내밀려면 그 정도의 입장료는 치러야 한다.

  배일한·이수운 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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