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디지털뉴딜이 희망이다’ 2부 ‘해법을 찾아라’에서는 디지털뉴딜의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들 아이디어는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한 추가경정 예산에 일부 반영됐다. 또 나머지는 추경 예산을 구체적으로 집행하는 과정에서 검토되고 있다. 3부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에서는 디지털뉴딜로 풀어야 할 산업별 해결과제를 소프트웨어(SW)·정보기술(IT)서비스·하드웨어(HW)·융합IT로 나눠 4회에 걸쳐 점검한다. 그동안 제시돼온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일자리 창출, 미래성장 기반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각 산업이 안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점과 숙제를 되짚어본다. 구체적인 디지털뉴딜 프로젝트도 이를 견지하고 진행돼야 효과가 배가될 것이다.
#1. 5월 셋째 주에 발간된 미국 플로리다주 한인 신문에 ‘전망 밝은 직업’을 주제로 한 기획 기사가 한 면에 걸쳐 실렸다.
그 직업이란 바로 컴퓨터 SW엔지니어. 흔히들 의사나 변호사를 최고로 여기지만 고개를 돌려 보면 보이지 않던 많은 직업들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기사였다. 고작 6000명의 한인이 플로리다주에 거주하다 보니, 한인들의 직업이 다양하지도 않을 테고 시야가 좁아질 수 있어 이런 특별기사가 빛을 발하는 듯했다.
내용은 미국 노동부의 발표와 MSNBC의 보도 내용을 종합한 것으로, 중요한 것은 어려운 시점에서도 밝은 전망의 직업을 갖는 1순위가 바로 SW엔지니어라는 점이다. 기사는 미국에서 가장 전망 있는 직업 20가지 중 첫 번째가 바로 SW엔지니어며 그 뒤를 이어 수의사와 재정분석가가 자리를 차지한다고 소개했다.
또 2016년까지 SW엔지니어의 임금이 급속히 증가할 것이며 일자리도 38%나 늘어날 것이라는 노동부의 발표 자료를 인용했다. 85만7000명의 SW개발자 중 중급 정도의 SW엔지니어는 7만9780달러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상위 10%는 11만9770달러의 임금을 받는다는 자료도 함께 첨부했다.
#2. 지난 18일(현지시각)부터 21일까지 미국 올랜도 오렌지 카운티 센터에서 열린 EMC 월드 2009. EMC의 미래비전과 기술을 공유할 수 있는 이 행사는 등록비가 자그마치 2100달러다. EMC 직원이 대다수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주로 외부 개발자들과 파트너, 고객들이 참석한다. 참석자의 수는 1만명이 넘는다.
만여 명의 인사는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이 하는 행사가 이렇기 때문이다. 수천달러에 달하는 등록비를 내고서라도 새로운 기술 동향에 관해 배울 것은 없는지 하는 기대감을 가득 안고서 열심히 행사장을 찾는다. 그래서인지 열기만큼은 톱스타의 콘서트장을 방불하게 한다. 하나라도 놓칠 새라 집중하는 것부터, 행사장 곳곳 바닥에 주저앉아 들은 내용을 정리하고 다시 한번 되새기는 모습은 한국인에게는 생소하기만 하다.
과연 이들은 사비를 지출해 이런 행사에 참석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대부분 참석하는 개발자의 소속 기업이 교육 차원에서 지원한다. 개발자들에게는 교육의 가치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3. 한국으로 돌아와보자. 한국 SW개발자들은 13만∼14만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나마 이 수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닷컴 붐이 일었을 때 SW개발에 발을 담갔던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SW개발자를 배출하는 전산학과와 컴퓨터공학과 정원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포항공대 수석졸업생이 의대 진학을 했다는 이야기나, KAIST 재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임금은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임금도 임금이지만 무엇보다 장래가 없다는 것이 그나마 훌륭한 인재들마저 떠나게 하고 있다. 가장 전망 있는 20가지 직업군은 고사하고 3D에 꿈도 없다고 해 4D 직종이라는 오명까지 썼다.
EMC 월드 2009와 같은 행사는 한국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점은 하나 있다. 무료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에서 자리를 비우고 콘퍼런스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부담이다 보니 벤더(SW·HW 개발기업)들이 공문까지 만들어 개발자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형국이다. 기업에서 개발자 교육 의지가 크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이다.
SW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사람’이다. 공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부품과 소재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사람의 창의력과 팀워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SW다.
그 말은 곧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라는 뜻이다. 또 일자리 창출에 상당한 공헌을 하는 산업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SW산업은 어마어마하게 광범위해졌다. SW라고 하면 아래아한이나 MS오피스, 윈도 정도의 SW수준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것은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기업의 업무 효율을 끌어올리는 SW에서부터 전기밥솥의 잡곡밥 짓는 기능을 위한 SW, 자동차나 선박에 들어가는 SW까지 SW영역을 정의 내리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다.
SW산업의 모습이 이렇게 웅대해져 가는 동안 국내 SW개발자의 수는 제자리걸음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에서도 개발자 중 SW개발자의 비중을 40∼50%까지 늘려 가려고 노력하지만 사람을 찾기 쉽지 않아 오히려 애를 먹고 있을 정도다. 많아지는 수요는 대부분 외산에 의존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SW산업을 육성한다면 고급 일자리 창출로 직결될 수 있다는 주장은 여기에서 나온다. 코딩업무를 하는 초급 인력이나 인턴 수준의 고용창출은 단순 DB 입력 등에 따라오지 못할 수 있지만, 질 좋은 일자리 창출에는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고용창출을 염두에 둔 디지털뉴딜에서 SW뉴딜이 강조되는 이유기도 하다. 뉴딜 정책은 정부가 주도해 고용을 창출하고 산업 전체를 업그레이드함으로써 경기를 회복시키는 정책이다. SW뉴딜은 뉴딜 정책의 취지와도 맞아떨어진다.
이 때문에 어떤 정책으로 SW산업 분야에 인재를 끌어모으며 고용을 늘일 수 있을지를 놓고 논의가 한창이다. 지금 수준의 SW산업으로는 질 좋은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명확한 해답을 내놓는다. 연봉이 높고 성공한 SW개발자가 속출한다면 SW인기는 치솟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벤처 창업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사람이 많아졌을 때 SW개발자를 꿈꾸는 사람이 많이 생겼고, 학원가도 성행했다.
거품은 꺼졌지만, 산업에 투자를 진행함으로써 다시 한번 SW개발자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계적인 SW를 개발하는 데 정부가 투자하고 이에 동참할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대학 지원을 바탕으로 해 우수 인력이 SW산업 분야에 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SW산업을 지탱하고 있는 인재들이 대접을 받고 실력을 다져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부터 SW개발의 가치를 인정하고 제값을 주려고 하는 것은 SW산업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현재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SW를 구매할 때 SW개발에 투입된 사람 수를 따져 가격을 매기려고 하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정부는 투입 인력 기준이 아니라 기능 중심으로 SW사업대가를 산정하도록 개정하고 있지만, 그릇된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기업에 대한 지적도 하고 있다. 개발자 업그레이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며 사업의 연속성을 위해 품질을 우선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개발자들이 비전을 갖고 새로운 기술 분야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도 기업의 몫이다.
미 플로리다주 한인 신문에 실린 ‘전망 밝은 직업’이 우리나라 신문에도 대서특필되는 날이 이제는 와야 한다.
올랜도(미국)=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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