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기업이 중국 공장과 한국 공장에 컴퓨터 생산을 동시에 지시했다. 부품이나 생산 공정은 같았다. 그런데 유독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만 전량 반품이 됐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프로세스 교육 담당자가 원인 파악에 나섰다. 중국 직원들이 제조 공정의 주요 원칙을 지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말이다.
막상 현장을 실사한 후 이 담당자는 자신의 추측이 잘못됐음을 알게 됐다. 중국 직원들은 교육받은 대로 제품을 생산했고, 오히려 본사에서 제시한 공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품 나사를 조일 때 5.5바퀴를 돌려야 하는데, 본사에서는 5바퀴만 돌리라고 했던 것이다. 이 담당자는 문제가 생긴 지 1주일 만에 나사 조이는 법을 5.5바퀴로 수정해 전달했고, 중국 공장의 불량 문제는 해결됐다.
그렇다면 같은 프로세스 교육을 받은 한국 공장에서는 왜 불량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무려 6개월이 지난 후, 그것도 우연히 밝혀졌다.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에 종종 금이 가는 현상이 발생해 그 원인을 찾던 중 5.5바퀴를 초과해 나사를 조인 사례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나치게 ‘영민한’ 한국 직원들은 5바퀴를 돌렸을 때 아귀가 맞지 않다고 판단, 임의로 5바퀴를 넘겨 나사를 조였다. 그러다 보니 무리하게 힘이 들어간 나사가 나오게 되고 제품에 손상이 간 것이다.
한국 공장은 큰 손실을 입고 난 후에야 잘못된 점을 발견하고 부랴부랴 수정된 지침을 다시 내렸다. 컴퓨터 조립 프로세스 교육을 실시한 지 6개월 만이었다. 결국 중국 공장의 프로세스는 일주일 만에, 한국 공장의 프로세스는 6개월 만에 수정된 꼴이 됐다.
이 사례는 규칙을 잘 따르지 않는 우리 기업 문화가 혁신 활동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프로세스를 개선할 때 기존 프로세스로 제작된 제품의 ‘스펙’만 조사해도 해당 프로세스의 타당성을 검증하거나 개선점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로세스가 ‘그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개선하기도 쉽지 않고, 개선해도 의미가 없다. 요란한 비전보다는 사무실 한쪽에 먼지 쌓인 프로세스 매뉴얼이 없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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