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과기·통신 분야 손잡는 외국과 손놓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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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단 과학기술·통신 분야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이 짝짓기에 분주하다. 일차적으로 세계 경기불황을 이겨내기 위한 해법 찾기지만 미래 산업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현지 업계는 물론이고 정부의 의지기도 하다. 정작 전력질주가 절실한 우리나라는 여전히 게걸음이다. 한동안 잊혀졌던 ‘샌드위치 코리아’론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열강의 심상찮은 제휴들=중국을 방문 중인 하토야마 구니오 일본 총무상과 중국의 리이중 공업정보화부 부장은 지난 5일 양국 간 차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기술협력에 합의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이 6일 보도했다. 양국은 동영상과 음악, 게임 등 휴대폰용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 공동 연구개발을 위해 일본 콘텐츠 사업자와 중국의 이동통신 사업자가 참여하는 ‘중·일 모바일브로드밴드 협력추진회’를 설립하기로 했다. 두 나라가 지난주에도 차세대 휴대폰 개발에 공조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발표는 후속 조치인 셈이다. 양국이 이동통신과 관련해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공조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소재·환경·에너지 등 8개 분야에서 공동 연구를 추진하는 포괄적 제휴를 추진 중이다. 지난 2월 양국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첨단기술 개발 공조방안의 골격이 잡혔다. 미국 에너지부의 로스앨러모스연구소와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 등 양국의 5개 국립연구소는 태양광 발전, 식물성 휘발유인 바이오 연료 제조, 이산화탄소 회수 및 지중저장(CSS) 등 8개 분야다.

 미일 양국은 이들 분야 외에도 지역별 전력량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전력이 남아도는 지역과 부족한 지역의 수급을 조절하는 차세대 전력망도 정비하게 된다. 그린 뉴딜을 중시하는 오바마 정부와 환경·에너지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일본이 환상의 복식조를 꾸린 격이다.

 중국과 대만의 비즈니스 협력도 한층 고조됐다. 양안 관계 개선의 일환으로 대만기업에 지분투자를 중국 정부가 허용한 직후 중국 최대 이통사인 차이나모바일이 대만 이통사 파이스톤 지분을 인수했다. 다른 분야보다 엄격히 제한적인 통신 분야의 지분 인수라는 점에서 반도체·LCD·부품 등 IT 관련 핵심 분야로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양안 비즈니스 협력의 강화는 일-중-대만 3각 연대로 확산될 전망이다. 대만과 일본 정부는 각각 자국의 메모리기업 지원을 시작했으며 양국 업체 간 합작사도 만들고 있다. 반도체 기술 습득이 절실한 중국이 가세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정점에 일본이 있다=일본은 그동안 한국과 대만, 중국의 첨단 산업 급성장에도 느긋하게 대처해왔다. 앞선 원천·기초 기술력으로 능히 대처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감의 발판이었던 세트산업과 핵심 부품 산업이 한국에 밀리면서 일본 정부와 산업계의 위기가 고조됐다. 한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을 발판으로 가전과 휴대폰까지 세트산업이 발전하면서 동북아 전자통신 산업의 맹주로 떠올랐다.

 기술 유출 등의 이유로 웬만해서는 꺼렸던 중국과 협력을, 그것도 차세대 휴대폰 분야 협력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기로 한 것은 일본의 다급함을 방증한다. 일본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 휴대폰에 밀려난 ‘메이드 인 재팬’의 위상을 중국 시장에서 회복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됐다.

 일본과 미국의 차세대 기술 공조는 한국·중국·대만 등에 비해 앞선 양국의 원천·기초 기술력을 공조로 유지하겠다는 포석으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이 특정 한국 기업을 거론할 정도로 한국 자동차용 핵심 부품 산업 발전을 예의주시했다. 일본 역시 자국 텃밭인 자동차용 부품 시장까지 넘보는 한국을 경계했다.

 ◇우리나라도 산업 외교력 키워야=지난해 대부분 일본 휴대폰 업체는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기술력은 차치하고라도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격 경쟁력이나 마케팅 전략에서 우리나라에 뒤졌기 때문이다. 외교력은 한 수 위다. 지난해 9월 24일 취임한 아소 다로 총리는 중국과 여섯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특히 지난날 29일과 20일 정상회담에서는 차세대 이동통신 협력을 이끌어냈다. 하토야마 구니오 일본 총무상의 중국 방문은 사실상 실무 성격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두 나라의 협력이 차세대 이동통신 분야로 귀결된 것은 우리 외교력에 아쉬움이 남긴다. SK텔레콤은 그간 중국의 3세대 독자 이동통신 규격인 TDS-CDMA 분야에서 기술 협력을 해왔다. 민간이 먼저 공들여 확보한 입지를 정부의 외교력으로 더 격상시키지 못한 셈이다.

 뼈 아픈 것은 미국과 일본의 차세대 에너지 분야 협력도 마찬가지다. 녹색성장을 누구보다 먼저 글로벌 이슈화했고 스마트그리드 기술도 있는 상황에서 정작 일본에 기선을 제압당했다. 오바마 정부 출범 시 한국과 일본은 모두 오바마 인맥이 없었지만 일본은 공동연구 협약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한국이 풍부한 시장과 인력을 보유한 중국과 기술력이 있는 일본 사이에 낀 상황을 빗댄 샌드위치론이 또다시 대두되는 이유다.

오계택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제가 국제화되고 시장이 세계화되면서 기술과 서비스, 제품 등 모든 분야에서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기존에 보유한 기술 및 서비스 분야 강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민관이 협력,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에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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