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비옥한 토양을 찾아 정성껏 심고 나무의 성질과 성장 상태에 맞춰 물과 비료를 알맞게 줘야 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최종적으로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햇빛, 바람과 같은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해 지속적으로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과학기술도 마찬가지다. 증가한 예산을 어디에 얼마나 쓰고,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국가 연구개발(R&D)을 효율적으로 키우는 핵심이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R&D 투자는 OECD 5위로 선진국 수준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아직은 투자 규모에 비해 과학기술 활동의 성과인 꽃의 아름다움은 다소 부족하고, 궁극적으로 얻게 되는 열매에 해당하는 경제적 효과도 미흡하다.
가장 큰 원인은 과학기술을 키우는 방법이 효율적이지 못해서다. 그 결과 과학기술을 구성하는 뿌리와 줄기, 잎이 고루 성장하지 못하고 햇빛·바람과의 상호작용도 원활하지 못했다. 즉 과학기술 역량을 구성하는 각 부문이 균형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과학기술 역량의 구성요소 균형 수준이 높은 국가가 R&D 효율성도 높고 과학기술 역량과 경제력의 상관관계도 매우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도 과학기술 역량을 구성하는 부문이 균형을 이루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에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역량 수준을 균형 있게 개선하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서 실시한 과학기술 역량평가에서 우리나라 수준은 OECD 30개국 중 12위로 나타났다. 과학기술 역량을 구성하는 요소 중 활동은 3위, 성과는 9위로 강점을 보인 반면에 자원 부문은 12위로 중간 수준, 환경 및 네트워크 부문은 각각 18위, 22위로 미흡해 부문 간 불균형이 심했다.
먼저 중간 수준으로 평가받은 과학기술 자원 부문을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연구원 규모 면에서는 OECD 5위권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나 이공계 고급 연구인력 비중은 20위권으로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안정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하고 학생들이 실제로 연구에 참여해 교육받게 하는 것이 우수 연구인력을 확보하는 기본이 된다.
과학기술이라는 나무에 영양분을 골고루 전달하도록 관리하는 역할은 환경 부문이 담당한다. 부처별로 분산된 R&D 사업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종합조정 기능을 더욱 확고히 해야 한다. R&D 관련 행정규제를 실질적으로 완화해 연구결과를 사업화하는 창의적 기업가가 많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연구자가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
활동 부문은 물과 비료 역할을 한다. 물과 비료 공급은 나무의 특성에 맞추는 게 우선이다. 정부는 기초연구, 특히 고위험·고수익 연구 투자를 확대하고, 민간 R&D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창조적 배분구조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2012년까지 정부 R&D 투자의 50%를 기초원천 연구에 투자하겠다는 정부의 과감한 계획은 어김없이 추진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네트워크 수준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산학연 협력, 기업 간 공동연구, 국제 협력연구는 시급히 개선돼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 주체 간 벽을 허무는 개방형 연구가 필요하다. 우수한 혁신 주체 간 협력으로 지식, 기술 확산과 활용이 강화되면 과학기술의 글로벌화는 물론이고 창의적 기술혁신을 실현할 수 있다.
이준승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jslee@kistep.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