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체임버스 시스코시스템스 회장이 ‘20억달러’라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한국 정부에 공언하고 돌아갔다. 전 세계적인 불황으로 세계 각국이 투자 유치에 혈안이 돼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매우 귀중한 성과다.
무역수지 흑자의 90%를 책임지며 작금의 경제 위기 극복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일등공신 IT가 이번엔 대규모 외국 투자 유치라는 성과로 그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각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시스코 회장의 방한 계획에서 귀국까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관계자들 사이에선 방송통신위원회의 역할론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IT 정책이 각 부처로 흩어져 ‘IT 컨트롤타워’로서의 운신 폭이 대폭 줄어든 방통위가 이번 시스코의 한국 투자 결정 과정에 카운트파트너 역할을 힘겹게 수행해 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투자액 수치까지 이끌어 낸 것도 방통위 실무진들과 시스코와의 지속적인 교감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시스코가 한국에서 구상하는 핵심 프로젝트는 ‘순수 IT 프로젝트’가 아니다. 차라리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더 가깝다.
설립할 글로벌센터는 그들의 표현대로 ‘시스코의 새로운 사업 분야인 유비쿼터스 도시 개발사업을 전 세계적으로 관장하는 글로벌본부’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 분야의 정책 결정을 국토해양부가 한다. 또 이 센터가 들어서는 위치는 경제특구인 인천경제자유구역으로 이에 대한 업무의 소관부처는 지식경제부다.
그럼에도 시스코 측은 회장 방한을 준비하면서 일찌감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하고 성사 여부를 기다렸다. 이는 다국적기업에서 보는 한국의 IT 컨트롤타워는 여전히 방송통신위원회(구 정보통신부)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그러나 최시중 위원장은 면담 요청을 보고 받고 ‘혹시 모를 부처간 불필요한 오해’를 걱정했다는 후문이다.
시스코 회장이 타 부처가 아닌 방통위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한 이유는 u시티·SOC·도시 컨설팅 등 시스코가 내부적으로 고민하는 사업들이 그 모양새는 ‘비IT’지만 모든 사업 방향의 근간에 ‘IT’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외국의 시각이 이렇다면 방통위는 더 이상 다국적기업들이 한국에서 사업과 투자를 진행할 때 헷갈리지 않도록 IT를 근간으로 그 위상과 역할을 보다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시스코 회장과 대통령의 면담이 끝난 직후 가진 배후 브리핑에서 시스코의 한국 투자 배경으로 우수한 IT 인프라와 인력을 꼽았다. 시스코 측도 이번 투자 결정이 한국의 ‘시장’이 아니라 세계로 동반 진출할 수 있는 한국의 ‘IT 인프라’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방통위가 부처간 불협화음을 경계해 IT의 일부만을 소극적으로 ‘컨트롤’할 경우 5년 후 10년 후에는 외국기업들이 한국을 쳐다보게 할 ‘IT인프라’라는 유인조차도 사라질 수 있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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