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인철 대구경제자유구역청장은 대구에서 차로 2시간 걸리는 대덕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두루 찾았다. 대덕연구개발특구본부 이사장을 지내 애정과 감회도 새로웠겠지만 내심은 지난 3년간 봐왔던 대덕의 알짜배기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대구로 유치하려는 복선이 깔린 방문이었다.
#지난해 박완수 창원 시장도 산·학·연·관 관계자를 대동하고 버스로 대덕의 중심에 있는 KAIST를 찾았다. 이들은 새벽 6시께 출발해 장장 4시간을 달려왔다. 당시 한국 첫 우주인 이소연 박사와 서남표 KAIST 총장 면담 일정까지 잡혀 있어 1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KAIST 분원 유치’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탓인지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답례라도 하듯 서 총장도 뒤이어 창원시와 창원대를 찾았고, 그 성과는 올해 나타났다. 자치단체에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의 대덕 방문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ETRI 등 큰 기관이 주요 타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향한 ‘구애’가 갈수록 뜨겁다. 출연연이야말로 산·학·연·관 협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데다 지역소재 대학 연구인력만으로는 R&D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덕단지에 몰리는 이유=집적화한 R&D 인프라 때문이다. 대덕연구단지에 지난 30년간 자그마치 40조원이 투입됐다.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R&D 기반을 형성했다. 지역적으로 대덕에서 멀리 떨어진 지자체가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바로 분원 유치다. 분원만 설치하면 해당 기관의 R&D 기반을 통째로 유치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정부가 최근 추진하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나 첨단의료복합단지 등 대부분의 정부 발주 프로젝트에 R&D 기반이 필요한 것도 이들 지자체가 대덕에 목매는 이유다. 대표적인 예가 R&D특구 지정 규정이다. 특구로 지정되려면 3개 이상의 연구기관이 있어야 한다.
광주는 이미 ETRI 호남권연구센터와 생산기술연구원 분원을 비롯한 10여개의 연구기관이 운집해 있어 특구 지정 유력지로 주목받았다. 대구 또한 R&D 기반은 확보하고 있다. 출연연의 공간 부족도 또 다른 이유다. 비좁던 차에 지자체가 용지와 시설을 무상으로 지원한다는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다.
◇산·학·연·관 상생 ‘찾기 나름’=지자체의 전략산업을 보면 출연연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모바일 특구 조성을 갈망하는 대구시는 ETRI 임베디드 SW연구센터(현 대경권연구센터)를 유치했다. 이에 ETRI는 올해 예산 투입 규모를 지난해 대비 두 배로 늘려 잡았다.
최근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자원탐사선 ‘탐해2호’의 정박항인 진해출장소를 포항으로 확대, 이전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포항에는 ‘얼음불꽃’인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탐사가 용이하다. 한국화학연구원은 지난 2006년 개소한 울산 정밀화학센터를 확대개편하기 위한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청사신축을 추진 중이다. 울산은 정말화학 산업이 발달했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오는 2010년 전북 군산에 융·복합플라즈마 연구센터(가칭)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부산은 자체적으로 ETRI 분원 유치의 타당성 분석과 기대효과에 관한 용역을 마쳤다.
지난 2월 창원시-경남도-KAIST-창원대는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R&D 및 인력양성 협력사업’을 위한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양해각서에는 산·학·연·관 협력체계로 모바일 하버(이동식 항만) 연구와 공학설계, 산업체 인력 재교육 등에 관한 협력내용을 주로 담고 있지만 협력의 종착역은 KAIST 창원분원 설치다. 산업기술연구회 및 기초기술연구회 산하 출연연구기관의 각 지역 분원 및 센터는 현재 총 43개다. 또 오는 2012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센터나 분원 신축 또는 신설을 계획 중인 곳도 총 8개나 된다.
◇과제 정부차원서 풀어야=분원이든 연구단위가 됐든 정부 출연연구기관이 전국 지자체와 연계돼 시너지를 낼 장기적인 마스터플랜 없이 정치인의 의지에 따라, 또는 필요성이 제기될 경우 상호 뜻이 맞아 주먹구구식 내지는 문어발식으로 진행되는 점이 문제다.
분원이지만 연구인력이 100명이 넘는 조직도 있고, 어떤 곳은 1∼2명에 불과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곳도 있다.
전문가들은 지역별 특색과 특화산업에 맞는 분원 또는 연구소 육성책이 나와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테면 화학분야는 화학산업이 활성화한 울산지역에 소규모 연구소인 프로젝트 기반의 ‘전문연구단위’를 만드는 것. 10명 미만의 랩 규모에서 100명까지의 센터조직을 과제 중심으로 만들어 운용하는 방안이다. 지원은 지자체와 함께 본원에서 하면 되고, 프로젝트가 완결되면 해체하면 된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분원 등을 정치인이나 기관장 치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추진하기보다는 뭔가 큰 그림을 갖고 중장기 계획을 세워 지역별 산업적 특색과 연계돼 추진돼야 할 것”이라며 “우선 주도면밀한 사전타당성 조사부터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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