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전자유통과 감성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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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처음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됐을 때 사람들은 텔레비전 속에 사람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텔레비전은 우리에게 기쁨과 눈물, 그리고 감동을 주는 귀한 친구였다. 2009년 한국, 텔레비전은 넘쳐난다. 두 대가 있는 집도 수두룩하다. 예전에 꿈으로 여겼던 화질을 보여주는 풀HD TV도 나와 있지만 소비자의 관심은 예전 같지 않다.

 전자유통이 올해로 11년째를 맞았다. 1998년 전자제품 양판점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 전자랜드가 포문을 열었다. 전자제품을 한곳에 모아 소비자의 비교 쇼핑을 가능하게 했다. 전자전문점의 탄생은 1990년대 방문판매 주부사원들의 ‘안면 장사’ 개념을 뒤흔든 유통혁명이었다. 전국구를 표방하며 전국 팔도 곳곳에 포진했다. 1년 뒤에는 하이마트가 등장했다. 여기에 뒤질세라 대기업 자회사인 리빙프라자와 하이프라자도 전자유통에 팔을 걷었다.

이들 전자전문점은 고객의 혼을 빼놓았다. 당시 전자제품 구입은 대부분 방문판매 사원을 거쳐서만 가능했는데 전자전문점이 판매의 룰을 깼다. 매출액은 연평균 100% 이상씩 성장했다. 시장 지배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전자유통의 버팀목으로서 큰 판을 벌인 셈이다.

이러한 전자유통 시장이 정체기에 들어섰다고 입을 모은다. 매출은 2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할인점, 홈쇼핑, 온라인몰의 등장에 전자전문점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비교 구매는 이제 전자전문점만의 몫이 아니다. 소비자는 인터넷에 접속해 언제든 비교 구매가 가능하다. 정보화 사회의 파편을 맞은 셈이다.

어쩌면 그동안 유지해왔던 판매방법을 바꿔야 할 때가 됐는지도 모른다. 최근 스토리텔링 산업에 관한 이야기가 무성하다. 실제로 웅진코웨이는 고객과 대화하는 웹 2.0 기반의 스토리텔링 홈페이지를 선보였다. 방문객이 증가했고 참여와 소통으로 매출도 증가했다.

일본의 한 전자제품 양판점은 제품이 아닌 이야기를 판다. 카메라를 판매하는 코너에는 ‘생활문화를 팝니다’라고 안내한다. 카메라와 관련된 가방, 삼각대, 렌즈, 플래시, 메모리카드, 포토프린터가 즐비하다. 심지어 카메라동호회를 안내해주고 출사 일정까지 상세히 소개한다. ‘빨래코너’에도 세탁기뿐만 아니라 세제, 유연제, 건조대, 표백제, 빨래망까지 전시했다. 세탁물에 묻어날 찌꺼기까지 고려한 판매전략이다. 전자제품 양판점이지만 생활을 입혔다.

우리가 어떤 상품을 소비한다는 것은 제품을 넘어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소비한다는 것을 뜻한다. 제품 선택에도 기능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제품이 가진 이야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배우 소지섭이 DSLR 카메라를 들고 어떤 장소에서 사진을 촬영했다면 그곳은 제품과 함께 이야기로 엮어낸 특화상품이 된다.

경제 위기의 시대는 새로운 경제의 출현 가능성을 예고한다. 국내 전자유통 시장이 성장 정체라고 하지만 기회를 만들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다. 기존 전략에 묻어가기보다 변화를 즐겨야 한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이야기 있는 상품’을 공급하면서 그 속에 ‘감성 바이러스’를 담아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동석 생활산업부 차장 ds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