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월 기준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금리인하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유동성 함정은 기준금리를 내려도 가계와 기업의 소비·투자가 일어나지 않고 회사채나 대출 금리 등이 반응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기존 대책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금리 인하를 비롯한 강도를 낮추되 시장 상황에 따라 과감한 조치를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다.
◇돈맥경화 여전=한은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2.50%까지 낮췄다.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추고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음에도 ‘돈맥경화’ 현상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시중자금은 떼일 염려가 없고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좇아 단기금융 상품 주변을 맴돌고 있다. 양도성 예금증서(CD)나 기업어음(CP) 등 단기금리는 많이 떨어졌지만 회사채 등 장기 금리는 여전히 높다. 시중 자금이 단기 금융상품으로 몰리는 것은 금융시장 불안으로 위험자산 회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데다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어 과감한 기업 투자가 어렵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어느 기업이 망할지 모르는 데 주식이든, 펀드든 장기로 투자할 수 있겠느냐”며 “일부 투자자들이 부동산, 주식 등의 가격이 더 내려가기를 기다리면서 단기 대기성 상품에 돈을 넣어두고 투자 기회를 기다리는 것도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금리인하 효과 제한적=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은 금리인하 등 통화 당국의 정책 운영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제시되고 있다. 일본은 1999년부터 ‘제로금리’를 시행했지만 은행 대출증가율은 오히려 둔화됐고 시중자금은 빠르게 단기부동화됐다.
한은 내부에서도 기준금리가 2% 아래로 낮아지면 통화정책 효력은 더욱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나는 더 이상의 금리인하는 경기부양 요인이 되지 못해 카드만 버리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경기침체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책적으로 대응할 여지는 남겨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인하 폭이 0.25%포인트로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금리인하 효과가 제한적인 것은 사실”이라며 “비우량 기업에 대한 선별기능을 회복해 유동성이 제대로 흘러갈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부동자금이 설비투자 등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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