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거꾸로 가는 한국

 모처럼 신선했다. 외신 보도를 접한 순간,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크렘린’의 주인이 인터넷 공간에서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크렘린 공식 웹사이트에 둥지를 튼 자신의 블로그에 지난 12일부터 네티즌이 개인 의견을 남길 수 있도록 했다. ‘크렘린=소통’,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등식이다. 하기는 ‘인터넷 강국=규제’도 어울리는 등식은 아니다.

 정치적 쇼일 수도 있다. 아직까지 블로그에서 경제정책이나, 블라디미르 푸틴을 향한 비판은 찾아볼 수 없다. 네티즌의 의견이 편집되는 상황에서 정부 비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지도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그는 정기적으로 블로그에서 주요 국가 정책, 외교 현안 등을 국민에게 설명해 왔다. 그래서 네티즌의 반응도 뜨겁다.

 중국에서 날아온 소식도 신선했다. 중국이 침체된 경기를 살릴 핵심 카드로 IT와 과학기술 분야를 지목했다는 내용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지난 11일 국영 라디오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총 600억위안(880억달러)을 투입하는 16개 중장기 과학기술 개발 프로젝트 실행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원자바오 총리가 언급한 과학기술 프로젝트는 오는 2020년까지 무선·반도체 등 IT 분야와 에너지 등 과학 분야 기술 개발 계획을 담았다. 총리가 과학기술 분야를 직접 챙김에 따라 이 분야 연구 개발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샘도 나지만 솔직히 부러운 대목이다. 그래서인지 다음날 접한 뉴스는 반갑지 않았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하는 ‘아리랑 3호’ 다목적 위성의 발사 업무를 수주했다는 보도였다. 중국과 일본이 유인 우주선까지 발사하는 마당에 과학 대국을 역설해온 우리가 ‘아리랑 3호’를 일본의 힘을 빌려 발사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20일 출범하는 오바마 신정부의 IT 뉴딜과 통신정책도 신선했다. 오바마 신정부는 광대역통신망과 헬스케어, 전력 IT의 3대 IT 분야에서 인프라 확충을 통해 90만개 새 일자리 창출에 집중한다고 한다. 율리우스 게나촙스키가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의장에 내정됐다. 향후 FCC의 정책은 인터넷과 벤처가 그 중심에 서는 반면에 그간 호황을 누렸던 대형 미디어 그룹들은 수난을 맞이할 수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외신 보도가 신선하게 느껴진 것은 아마도 우리가 거꾸로 가기 때문일 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에게는 흔한 뉴스였다. 청와대는 인터넷으로 국민과 소통했다. 과학기술부총리제를 도입하고 과학기술강국을 외쳤다. IT와 벤처 육성을 통해 일자리 창출에도 힘을 쏟았다. 모두 옛일이 됐다.

 국회는 사이버모욕죄 신설 등을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방송을 재벌 신문에 넘겨주려는 방송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힘 겨루기를 한다. 한국 정부가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네티즌을 체포했다는 뉴스가 외신의 ‘희한한 뉴스(Oddly enough)’ 면에 게재됐다. ‘거꾸로 가는 우리’의 한 단면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고, 또 씁쓸하다.

김종윤 국제부장 jy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