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만화]김동화 화백의 ’라이파이’

Photo Image

 1960년대 초 아현동의 한 만화가게. 어둠침침한 불빛 아래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서 아홉 살 소년 김동화는 ‘라이파이’를 만났다.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소년 김동화는 라이파이가 주는 공상 속에 빠져 순해질 수 있었고, 생각할 수 있었고, 어려움을 참을 수 있었다.

 지난 4일 마포구 서교동 화실에서 만난 김동화 화백(59)은 “만화가게에서 반쪽짜리 라이파이의 ‘녹의 여왕’편을 봤는데 녹의 여왕이 어찌나 요염하고 아름답던지…”라며 아홉 살 때 라이파이를 처음 봤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김동화 화백은 라이파이를 본인 인생의 만화로 꼽은 이유를 “그 시대를 읽었던 수많은 작품 중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상과학만화’를 표방한 라이파이와 김 화백의 작품 ‘요정핑크’ ‘빨간 자전거’를 비교했을 때 공통점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김 화백은 “자유롭고 거침없는 상상력과 만화의 순기능에 대한 믿음을 심어줘 만화가로서 창작을 하는 데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대답했다.

 라이파이가 출간된 1959년 말에서 1960년대 초는 만화를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억압·통제를 시작했던 시기여서 만화를 보는 것은 여전히 부모님과 선생님께 혼줄이 나는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도 없고, 라디오 역시 한 마을에 하나 정도밖에 없던 시절, 만화는 그 당시 어린이에게 유일한 유희고 대중문화였기에 인기는 높았다. 그중 압권이 라이파이. 김동화 화백은 “그림을 잘 그리건 못 그리건 상관없이 반 아이들 모두 라이파이를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며 “그 어느 아이돌 스타보다 라이파이의 인기는 높았다”고 회상했다. 만화가게에서도 다른 만화책은 모두 한 권씩만 갖출 때 라이파이는 편당 두 권에서 열 권씩 갖추는 것도 모자라 그 책을 반으로 나눠 돌려보게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가난했던 시절 설날 용돈을 받거나 물 긷는 심부름을 해 푼돈이라도 생기면 그는 만화가게로 달려갔다. 연탄난로 위의 떡볶이와 어묵의 유혹은 강렬했지만 그는 대부분 만화를 선택했다.

 행복하고 절실하게 만화를 봤기 때문일까. 흑백의 라이파이는 어린 시절 김동화의 상상력과 더해져 어떤 영화보다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녹의 여왕의 눈 화장을 지금 보면 검은 선에 불과한데 내게는 초록색 아이섀도와 짙은 마스카라로 남아 있어요. 그땐 모든 장면에 색이 있다고 믿었던 것 같아요.”

 라이파이의 어떤 점이 김 화백을 매료시켰을까. 김 화백은 “가난할 때 한국을 무대로 한 라이파이는 희망이기도 했다”고 답했다.

 수많은 영웅 중 평범한 사람에 가까운 라이파이의 이미지도 그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김 화백은 “라이파이는 언제든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이미지여서 더욱 공감하고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만화가협회장의 위치에 올라 라이파이를 분석적인 시각에서 봐도 김 화백은 “굉장한 작품”이라고 호평한다.

 탄탄한 이야기 구성과 기획력. 50년 전에 휴대폰 문자메시지, 무선호출기, 자가용 비행기와 같은 과학적인 미래를 그려낸 상상력은 지금 봐도 놀라운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는 “산호 선생이 지금 그 당시의 기획력으로 작품을 냈다면 스필버그에 견줄 만한 파급력을 지니고, 라이파이는 세계를 제패하는 캐릭터가 됐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김 화백은 라이파이의 작가 산호 선생에 대해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미래 세계의 모습을 쫀쫀하게 표현하고 블록버스터에 견줄 만한 연출을 한 천재 중의 천재”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해외에서 만화 붐을 이끈 공로로 지난해 문화콘텐츠 해외 진출 유공자로 선정되고, 만화가협회장으로 만화계 안팎의 일을 챙기는 위치에 올라섰지만 그는 여전히 김산호 선생 앞에서는 영락없는 아홉 살 소년 독자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초로의 화백은 2003년 부천만화정보센터가 복간한 하드 커버의 ‘라이파이’를 한 장씩 넘기며 “아우, 정말 굉장하다”며 연신 감탄했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김동화 화백>

 1975년 소년한국일보에 ‘나의 창공’을 발표하면서 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4년 만화잡지 ‘보물섬’에 ‘요정핑크’를 연재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꾸준한 장르적 실험으로 작품 세계를 개척해 왔다. 2002년 조선일보에 ‘빨간 자전거’를 3년간 연재했고, 이 만화는 온라인에서도 세대를 넘나드는 사랑을 받았다. 현재 한국만화가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프랑스 현지 시장을 공략할 작품을 준비 중이다.

 <라이파이는>

 1959년부터 1962년 사이 산호 선생이 발표한 국내 최초의 공상과학만화. 4부작 총 32권으로 발간됐으며 1부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2부 ‘피노3세와 라이파이’, 3부 ‘녹의 여왕과 라이파이’, 4부 ‘십자성의 신비와 라이파이’로 구성됐다.

 이 중 3부인 ‘녹의 여왕과 라이파이’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대부분의 원본이 소실됐지만 부천만화정보센터가 총 총 21권을 모아 이를 기초로 2003년 복간본을 냈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