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샤프가 소니와 함께 내년 세계 최대 LCD 기판 크기인 10세대 라인을 신설 가동하려던 계획에 적신호가 켜졌다. 두 회사 모두 최근 실적 악화로 대규모 투자에 따른 자금 부담이 커지면서 10세대 라인 가동 시기는 물론이고 합작 투자 여부도 불투명해진 것으로 보인다. 당초 샤프·소니의 10세대 합작 투자는 전 세계 LCD 패널 시장을 석권한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뜻도 있었다는 점에서 향후 국내 LCD 업계의 이해득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공식 발표는 없었으나 샤프는 10세대 LCD 패널 라인 4단계 투자 가운데 1단계 라인을 단독 투자, 내년 6월께 가동할 계획을 9월께로 늦췄다. 두 회사는 또 올 초 합작 투자 발표 후 지난 9월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으나 올 한 해가 다 가도록 미뤄졌다. 지난 3월 합작 투자 선언 당시 양사는 총 3800억엔,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6조원 가까운 돈을 투입해 10세대 LCD 라인을 가동할 예정이었다.
양사의 10세대 LCD 라인 가동 계획이 난관에 봉착한 것은 무엇보다 실적 악화에 따른 자금 부담과 시황 악화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샤프는 지난 9월 반기 결산에서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35%나 급감했다. 소니도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90% 이상 줄어든 11억엔 수준에 그쳤다. 특히 샤프는 지난 3분기 전 세계 LCD TV 시장에서 10.2%의 점유율로 삼성전자·소니에 이어 3위에 올라서기는 했지만 이는 출혈 경쟁을 감수한 결과다. LCD 패널과 TV 세트 제품의 재고 물량을 털어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국내외 시장조사기관과 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샤프가 보유한 6·8세대 LCD 패널 라인만 해도 4분기 가동률이 80%대에 그치는 실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적 악화로 가뜩이나 어려운데다 내년 LCD 패널 시장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샤프와 소니가 10세대 LCD 라인에 방대한 투자를 감행할 수 있을지 하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부재호 디스플레이서치 이사는 “양사 모두 자금 조달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당초 10세대 라인 가동 계획이 현재로선 어렵지 않겠느냐”면서 “내년 3분기 1단계 라인 가동이나 소니의 합작 투자 여부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샤프·소니의 10세대 합작 투자가 차질을 빚게 되면 세계 LCD 패널 양산 경쟁을 주도하는 국내 LCD 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니의 행보가 큰 변수다. 소니는 삼성전자와 7·8세대 LCD 패널 라인에 합작 투자를 단행했다. 10세대 LCD 라인은 샤프를 선택하면서 향후 삼성전자와의 합작은 물 건너갈 것이라는 관측이 한때 나왔지만 가능성은 다시 열렸다. 요즘처럼 엔화상승 현상이 지속되면 굳이 비싼 값을 들여 자국 내에서 LCD 패널을 살 필요가 없는 셈이다. 부 이사는 “철저히 비즈니스 논리만 따진다면 종전처럼 삼성전자로부터 LCD 패널을 조달하는 게 소니에 유리하다”면서 “삼성전자의 차세대 LCD 라인 투자에 소니가 다시 참여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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