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포트/3면/디자인 메가트렌드를 주도하라

 브라이턴(영국)=박상욱

서식스대학 과학기술정책연구단위 sangook.park@sussex.ac.uk

 본론 전에 고백하건대, 나는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다. 디자인이 기술을 최종적으로 담는 그릇이며 사용자가 직접 보고 만지는 결과물이라는 관점에서, 또 기술과 시장 나아가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기술 외의 사례와 비교한다는 측면에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다. 그저 디자인에 민감한 한 소비자기도 하다.

 영국 남동부에 위치한 브라이턴 대학의 디자인역사연구센터에서는 근대 이후 디자인의 역사를 국가시스템 관점에서 분석해왔다. 우드햄 브라이턴대의 ‘20세기 디자인’은 지난 100년 디자인의 메가트렌드를 국가별로, 세계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디자인의 변화 혹은 발전에서 사회사상, 체제, 기술발전 등이 준 영향을 강조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순수예술이나 순수과학 분야에서 사회와의 상호작용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익숙해져 가는 가운데, 시장 의존성이 큰 디자인 분야에는 사회와 상호작용이 당연히 존재한다.

서둘러 이 칼럼의 결론을 꺼내 적자면 이렇다. 한국 기업들이 ‘시류’에만 너무 민감해 통사적인 전체 맥락과 흐름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산제품의 디자인은 최근 10년 사이 대단히 좋아졌다. 이제는 세계 일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10년 전만 해도 가전 분야에서 소니의 디자인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꼈지만 지금은 LCD TV 등 일부 제품에서는 오히려 다른 나라 제품을 앞서는 느낌이다. 휴대폰, 자동차 등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엄청난 발전을 이룬 제품군이 여럿이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한국 기업들은 외국 기업이 이끈 디자인 트렌드에 누구보다도 빨리 발을 맞추는 ‘벼락치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국내외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출시된 삼성전자 옴니아폰은 ‘아이폰의 대항마’로 기대를 모은다. 과거 ‘블랙잭’ 폰은 블랙베리의 대항마였다. 왜 이들은 ‘대항마’에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최근 5년간 모바일 제품 디자인에서 가장 큰 변혁인 슬림화, 그리고 유저 친화적 인터페이스에서 한국 제품들은 트렌드세터(trendsetter)가 아니었다. 초히트 휴대폰인 모토로라 레이저(RAZR)가 등장했을 때 한국산 휴대폰은 갈수록 뚱뚱해지고 있었다.

 포화돼 가던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 불룩한 양복 주머니가 불만이었던 비즈니스맨들의 작은 목소리보다는, 가방이나 핸드백을 항상 들고 다니는 성장수요층인 주부나 학생을 더 의식한 결과였다.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유명한 말을 했지만 모토로라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은 ‘슬림’이라는 형태를 목표로 잡았다. 당시 기술 수준을 고려해 볼 때 국내 업체들이 슬림한 휴대폰을 만들 기술적 역량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 업체들이 개발력과 시장 지배력에 비해 트렌드세팅 능력이 약하고 선도적 디자인을 밀어붙이는 과단성이 부족한 것도 지적하고 싶다. 한때 업계 주변에서 터치스크린 방식은 휴대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컨버전스화에 따라 디스플레이 면적이 중요해지면서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쇠락해 가던 팜으로부터 개발인력을 끌어온 애플이 해낸 일이다. 아이폰은 PDA를 베이스로 했던 스마트폰들의 전철을 밟기를 거부했다.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고 갖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만드는 능력이 관건이다.

 문제는 미래다. 선진국에서는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을 논하고 있다. 소외되는 사용자를 줄이는 것이 첫째 방향이다. 인터페이스는 노인이나 어린이도 다룰 수 있도록 쉽고 즐거워야 한다. 연결은 표준적인 것이 좋다-멀티미디어 폰에 3.5㎜ 이어폰 단자가 없다면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감점 요소다. 저소득층 소비자를 위해 단순한 기능과 디자인의 제품도 필요하다. 네그로폰테 MIT 미디어랩 교수의 ‘OLPC’가 좋은 예다.

 환경문제와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둘째 방향이다. 생산에서나 작동 중에 더 적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내구성을 높이고,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채용한다. 포장과 번들을 줄여야 한다. 이 모든 방향은 제품의 매력과 경쟁력을 높일 뿐 아니라 원가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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