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다국적IT기업](상) `벼랑끝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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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67년 한국IBM을 필두로 다국적 IT기업이 한국에 진출한지 41년째인 2008년, 다국적 IT기업이 총체적인 위기에 빠졌다.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장 성장세가 더뎌진 가운데 올 초 공공IT 시장이 얼어붙은 데 이어 하반기 경기침체와 환율급등 악재까지 겹치면서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다. 급기야 지사장 교체설과 구조조정설이 난무하는 등 다국적 IT기업의 올 겨울 체감온도는 어느 해 보다 떨어질 전망이다. 실적 부진과 위상 추락이라는 난제에 부딪힌 다국적 IT기업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1. 지난달 16일 서울 수송동에 위치한 한국후지쯔 본사.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열린 분기 경영설명회에서 박형규 대표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묻어났다. 박 대표는 원엔 환율 급등에 따라 환차손이 심각하다며 상황이 어렵지만 다 같이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이 회사는 이미 지난 회계연도 실적이 적자로 돌아섰고, 상반기 한 차례 감원까지 진행한 터였다.

 #2. 최근 한국IBM에는 고객과의 골프를 금지하는 ‘영’이 내려졌다. 비용 절감을 위한 조치다. 이뿐만 아니라 해외출장, 고객행사를 비롯한 전반적인 비용을 줄이는 긴축모드로 전환했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지난 2004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다국적 IT기업이 ‘시계 제로’ 상황에 처했다. 국내 시장이 사실상 정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실적은 악화일로다. 올 들어 감사보고서를 내놓은 주요 다국적기업 가운데 델인터내셔널,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인텔코리아, 한국유니시스, 한국후지쯔, 한국IBM 등의 영업이익은 전년에 비해 뒷걸음했다.

 과거 업계의 성장을 이끌어 온 기업용 시스템 시장은 포화 상태다. 한국IDC에 따르면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국내 서버 시장은 올해 금융권 차세대시스템 수요에 힘입어 소폭 성장세로 올라섰으나 내년에는 다시 하락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스토리지 시장도 HW는 2007∼2011년 연평균 성장률이 -0.2%에 그칠 전망이다. 업계가 기대하는 스토리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더하더라도 연평균 예상 성장률은 4.2%에 불과하다.

 성장세가 둔화된 상황에서 환율 급등은 다국적 기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해외에서 제품을 들여다 국내에 판매하는 사업이다 보니 환율상승은 곧 판매단가 인상 요인으로 작용한다. 출고가를 올리면 쉽게 해결될 문제 같지만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이던 업계로서는 환율상승분을 그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몇몇 업체가 출고가를 인상했지만 뒤편에서는 마진율을 축소하는 형태로 가격 상승분의 일부를 흡수하는 실정이다.

 고객 영업과 실제 제품공급 사이에 2∼3개월씩 소요되는 사업 특성상 사업을 수주하고 웃지 못하는 일도 벌어진다.

 수주해 놓은 사업이 환율상승으로 인해 회사에 손실을 안기는 ‘폭탄’으로 돌변하기 때문. 업계의 한 임원은 “시장 수요는 제자리 걸음인데다 환율 변동으로 인해 하루아침 사이에 실적이 흑자와 적자를 오가니 한 달 뒤 사업계획조차 세우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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