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국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과 관련해 낙제점을 받은 국가다. 지난해 12월 독일 환경단체인 저먼워치(German Watch)가 발표한 ‘2008년 기후변화 성과 순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온실가스 감축 노력 대상 국가 56개국 가운데 51위로 중국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 한국이 온실가스 감축 의무대상국으로 지정되면 이러한 평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국내 기업 중 책임의 정도가 막중한 업계가 바로 물류업계 및 제조·유통업의 물류부문이다.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중 20%가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 온실가스 발생량을 물류 흐름의 모든 과정에서 줄이자는 이른바 ‘그린 물류’를 실천하지 못하는 업체는 단기적으로는 탄소배출권 구매로 인한 재무적 손실을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이미지 타격이라는 상황에 직면할 전망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의 인식은 안이하고 정부 대책 역시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조·유통업계 인식 저조=본지는 국내 물류업계 및 제조·유통업체의 물류사업부문 200여 업체를 상대로 지난해 그린 물류 실태를 조사한 ‘환경친화적 물류활동의 추이’라는 보고서 전문을 입수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유통업계의 그린 물류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품목·상태·형태 등을 고려해 제품수송의 효율을 높이느냐는 질문에 물류업체는 80% 이상이 ‘그렇다’고 답한 반면 제조업체는 60% 이하가, 유통업체는 40% 이하가 이같이 답했다. 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체가 포장부피를 줄이는 등 그린 물류를 도입하지 않으면 물류업계는 포장재 중량 때문에 비효율적인 운송을 할 수밖에 없다.
화주와 물류업체 간에 화물정보를 공유해 돌발상황으로 인한 유가손실을 막느냐는 질문에도 물류업계(80% 이상), 제조업체(60% 이하), 유통업체(40% 이하) 순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밝혔다.
운송 횟수를 줄이기 위해 화물공차시스템 및 표준물류정보시스템 등 물류IT활용 여부를 평가한 결과에서도 제조업체는 5점 만점에 2.5점의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물류업체는 3.6점으로 제조업체보다는 다소 높았지만 역시 활용도는 낮았다.
박석하 한국물류관리사협회 회장은 “그린 물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전 업체들이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친환경에 대한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며 “특히 물류업체에 물량을 맡기는 제조업체 등 화주들이 그린 물류를 실천하면 비용이 커진다는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감한 지원과 규제 필요=전문가들은 정부가 녹색물류인증 취득 요건을 높이는 게 우선이라 지적했다. 김현수 경기대학교 교수는 “2013년이라는 목표를 두고 매년 달성 여부에 따라 인증에 대한 혜택을 탄력적으로 조절해야 한다”며 “목표치를 달성한 업체들에게는 과감한 지원을 해주고 이를 못한 업체들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조업체가 전담 물류업체를 선정할 때 그린 물류 실천 여부를 고려토록 적극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LNG 저공해 차량 보유 비율 등 그린 물류 관련 항목을 점수화해 물류업체를 선정한다.
홍상태 배화여대 겸임교수는 “삼성전자·LG전자 등 글로벌 기업 역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압박을 받기 때문에 물류 계약조건으로 그린 물류 이행조건을 포함시키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류업계도 비용이 아닌 경쟁력 제고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대형물류업체인 사가와큐빙의 ‘아이들링스톱’과 ‘드라이브 레코더’ 설치가 대표적 사례다. 아이들링스톱은 운전자가 차에서 떠날 때 엔진을 정지시키도록 허리벨트와 자동차 열쇠를 연결한 것이다. 드라이브레코더는 운전 중 급브레이크 등 위험상황이 발생하면 영상을 자동저장하는 시스템이다. 사가와큐빙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별운전자를 평가해 유류비용을 절감한다.
박석하 회장은 “그린물류는 비용이라는 인식이 크지만 작은 실천만으로 유류비용을 절감해 기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진욱기자 coolj@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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