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사생활 보호는 없다

 영국은 1인당 CCTV 설치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개인 정보는 물론 신체 정보를 담은 생체인식카드도 의무화됐다.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영국 정보기관은 하루 평균 1000명 이상의 전화를 감청하고 이메일과 편지를 엿보고 있다. 영국이 이번에는 자국 내 모든 사람들의 전화·이메일·웹사이트 방문 기록 등을 보관, 감시하려 하고 있다.<본지 2008년 10월 6일자 참조>

영국에선 현재 내무장관의 특별 영장을 발부받은 건에 대해서만 이메일과 웹사이트 감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안은 영장 발부와 무관하게 개인의 통신 정보를 쌓아 둔다. 테러나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용의자 추적을 용이하게 하겠다는 게 정부가 밝힌 목적이다. 재키 스미스 내무장관은 “기술 발달로 온라인에 복잡하고 세분화된 공간이 생겨나 테러 위협이 커지고 있다”며 데이터 베이스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영국 내무부에 따르면 데이터 베이스에는 영국 내 모든 사람들의 통신 기록이 담긴다. 누가 어떤 번호로 전화했는 지, 또 어떤 웹사이트에 방문하고 누구에게 이메일을 보냈는 지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보관되는 것이다. 내무부 측은 “그러나 통신 내용까진 기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무부는 사생활 침해는 없다고 항변하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제2야당인 자유민주당의 크리스 헌 내무 담당 대변인은 “정부가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려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제1야당인 보수당 측도 “전면적인 토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민단체들은 국민 개개인에 대해 이처럼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독립적 지위를 가진 영국 정부의 테러법 검토 책임자도 우려스런 입장을 나타냈다.

영국 정부는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현재 논의 중인 여러 구상 중 하나일 뿐”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면서 “내년 공론화 전까지는 법제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더 타임스는 지난 5일 정부가 데이터 베이스 구축에 120억 파운드(약 26조)를 투입키로 잠정 합의하고 이 중 10억 파운드(약 2조1600억원)를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9.11 테러와 2005년 런던 대중교통 자살폭탄 테러 후 영국 정부는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국민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는데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도 그 만큼 커지고 있다. 최근 영국 정부는 테러 용의자를 기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구금할 수 있는 기간을 기존 28일에서 42일로 늘리려다 상원의 반대로 부결되기도 했다.

윤건일기자 ben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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