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는 선비의 기상과 통한다. 속은 비어 있어, 삿되고 번잡한 생각이 없고, 곧게 뻗어 탄탄한 줄기는 바람에 유연하니 세상과 조화를 이루되 이런저런 속세의 것에 현혹됨이 없다. 곧은 몸통에 정연하게 늘어선 마디마디는 군자의 절도(節度)를 드러낸다. 가지와 잎 또한 간결하고 단정해 세세한 말단까지 허튼 구석이 없다. 한 줄 바람이 지나는 대나무 숲에서는 이내 세상의 혼잡함은 잊혀지고 내 속의 나를 만나게 된다.
대나무의 이런 기상은 번잡하고 혼란스러운 심신을 안정시키고 맑게 하는 약성(藥性)으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나무 안쪽 면을 깎아낸 것을 죽여(竹茹)라고 하는데, 죽여는 위(胃)의 열을 내려서 가래, 기침, 트림 등을 없애주며 편안히 잠들 수 있게 안정시킨다. 대나무 잎인 죽엽(竹葉)도 이와 비슷한 효능을 가진다. 대나무를 갈라서 기왓장 걸치듯이 여러 개 걸치고 밑에서 온돌방처럼 열기를 가하면 양쪽으로 물이 쭉쭉 샌다. 이것을 그릇에 모아 얼른 밀봉하면 죽력(竹瀝)이라는 약재가 된다. 죽력은 비교적 심한 허열, 갈증, 번조증, 열가래 등을 풀어 내려서 맑게 한다. 우리가 흔히 요리에서 먹게 되는 죽순(竹筍)은 앞의 것들과 비슷한 효과를 부드럽게 내면서 기운을 도와주는 힘이 있다.
예전에는 이런 대나무의 성질과 묵힌 똥의 성질을 이용해서 약으로도 썼다. 옛날 변소의 똥통 속에 대나무 마디를 넣어 두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똥물이 대나무에 걸러지면서 안으로 스며들어 차게 되는데, 아주 심하게 맞고 온 사람에게 약으로 쓰기도 했다. 적당한 환경에서 대나무를 술에 담가두면 안에 술이 스며들어 차는데, 술의 열기를 식히면서 정신과 몸을 맑히는 효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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