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SW코리아, 다시 시작이다](7부)④ 만연한 불법복제, 한국SW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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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저작권 보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용도별 불법복제 현황과 침해 현황

 수백개의 인쇄소가 몰려 있는 서울 중구 충무로 골목. 보통 한 가게당 두세 명의 직원이 힘들게 일을 하지만 좀처럼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미국 쿼크사의 쿼크익스프레스를 비롯한 전자출판 솔루션과 다양한 폰트(서체를 디지털화한 것)를 사용하고 있는데 상당수가 불법복제품으로 추정된다.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폰트 역시 기업의 노력과 아이디어가 담겨 있는 지식 재산권을 보유한 엄연한 소프트웨어(SW) 제품이다. 특히 한글 폰트는 알파벳과 달리 모든 글자가 만들어질 수 있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을 다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폰트 개발에만 길게는 1년이 소요될 정도로 품이 들어간다.

 폰트 개발 업체는 보통 편집이나 출판하는 곳에 다른 패키지 SW처럼 PC당 라이선스를 받고 이를 판매한다. 최근에는 휴대폰·PMP·프린터·웹에서도 폰트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이곳의 매출도 증가하는 추세다. 영화·방송·게임에서 자막은 물론이고 영화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에서 배우 이름 올라가는 것도 다 폰트 SW를 이용한다.

 이렇게 쓰임새가 많은 폰트지만 국내 폰트 기업 매출을 다 합쳐도 200억원에 불과하다. 이 역시 만연한 불법복제 때문이다.

 국내 최대 폰트 개발업체인 윤디자인연구소의 천대필 부장은 “가장 저작권에 민감해야 하는 출판 업계에도 불법복제가 만연하다는 것이 참담한 현실”이라며 “개인 사용품은 복제품이 95%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그나마 폰트가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한다는 지식재산권이라는 인식을 일반인에게 인식시켜 준것은 싸이월드였다. SK컴즈가 싸이월드 미니홈피 꾸미는 폰트를 도토리로 구매하도록 한 것이 폰트 인식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SW 저작권 문제에서는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포스코·현대자동차 등 세계를 주름잡는 대기업이 탄생했지만 SW저작권 보호는 그렇게 나아지지 않았다.

 국제 민간단체인 사무용SW연합(BSA)은 올 5월 지난 2007년 한국의 불법 복제율이 43%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세계 평균치 38%보다도 높다. GDP 순위 13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것을 비교하면 창피한 수치다. 이로 인한 업계의 피해액은 5400억원. 지난 2006년보다 1000억원이나 늘었다.

 최근 캐나다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업계 한 관계자는 “캐나다 대학 교내에 SW를 파는 상점이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었지만 우리나라 대학은 아예 SW를 파는 상점마저도 없는 실정”이라고 비교했다. SW가 저작권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할 대학에서 SW는 살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꼴이다.

 공학 SW를 판매하는 다국적 기업 사장은 “대학은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적용해 시중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공급하지만 사실상 거의 구매가 없다”며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이미 우리 프로그램을 알고 있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데 활용한다”고 지적했다.

 정품 SW 사용을 독려해야 할 정부부처도 불법복제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직원 9000명인 B부처는 MS의 오피스2000 라인선스가 20개, 오피스XP 라이선스 1400여개, 오피스2003 라이선스 360여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문서편집 프로그램이 불법복제돼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또 직원 1만2000명인 C기관도 오피스2000 라이선스 200여 카피, 오피스XP 900여 카피, 오피스2003 200여 카피며, 오피스2007은 채 10카피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만연한 불법 복제는 국내 시장까지 왜곡시키고 있다. 비교적 대기업을 주 대상으로 SW를 판매하는 기업과 중소기업 대상의 SW 기업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는 것. 본사 매출 기준으로는 오토데스크에 비해 1.5배 더 많은 어도비의 국내 매출은 오토데스크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500억원가량에 그치고 있다.

 오토데스크의 주력 품목인 CAD 프로그램은 대기업이 주로 사용하다보니 비교적 불법 복제가 적지만 포토숍, PDF 등 일반인과 중소기업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라인업을 보유한 어도비의 매출은 불법복제로 인해 정상적인 매출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MS의 매출 역시 국내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호주는 1조원이 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3분의 1 수준인 3800억여원에 불과하다. 불법복제를 단속하는 행위에 일부 SW 기업까지도 ‘다국적 기업의 배를 불려주는 행위’라는 시각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또 중소기업이나 PC방 등은 무차별적인 단속으로 사업 영위까지 어렵다고 토로한다. 물론 불법복제 단속의 혜택은 세계 SW 시장을 주름잡는 다국적 기업에 돌아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SW산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불법복제가 근절돼야 국내 SW산업 발전기틀이 마련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유재성 한국MS 사장은 “MS는 최근 이스라엘 SW 기업은 물론이고 보안과 관련해 루마니아 SW 기업을 인수했다”며 “두 나라의 공통점은 SW 저작권 인식이 높아 SW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SW 저작권을 보는 인식만 바뀐다면 충분히 SW 강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은 충분하다”며 “제조업 강국에서 지식강국으로 가는 데는 저작권을 보호해 창의력을 높이는 것이 기본요소”라고 덧붙였다.

 폰트 개발업체인 한양정보통신의 김준 이사는 “과거에 프랑스에는 프랑스 고유의 서체가 있었는데, 이를 전혀 디지털화하지 않아서 지금은 미국 폰트를 가져다 쓰는 실정”이라며 “이러다가 우리나라도 외국에서 한글 폰트를 구매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유형준기자 hj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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