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프라운호퍼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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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는 과학기술의 시대다. 특히 기초기술을 바탕으로 한 산업기술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술은 산업화되고 상업화되는 데 의미가 있다. 따라서 미래 그린오션 산업 역시 응집된 산업기술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다. 선진 각국이 산업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는 것도 돈 되는 미래 산업기술 시장의 패권을 쥐기 위한 것이다. 전 세계 기술 강국으로 알려진 독일은 산업기술개발에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이다. 특히 독일 프라운호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응용과학 기술 연구소로 산업과 연계된 기술개발의 최고봉이다. 전자신문은 한국 산업기술의 발전을 위한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독일 프라운호퍼의 산업기술 개발 현황과 한스 요르그 블링어 총재의 인터뷰로 미래 준비상황을 알아봤다.

 ‘산업’. 독일을 대표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누구보다 일찍 산업에 눈을 뜨고 이를 일궈온 것이 독일이라는 나라다.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곧바로 상품에 접목시키는 데 가장 뛰어난 더듬이를 가졌다. 이 더듬이 역할을 하는 독일 대표 응용 기술 연구소가 바로 프라운호퍼다. 1년에 투입되는 예산만 13억유로(약 2조원)에 이르는 이 연구소는 규모나 연구 업적 면에서나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독일 전역 56개소가 컨소시엄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1만3000여명의 직원들이 독일 전역에서 연구활동을 진행 중이다.

1949년 설립된 프라운호퍼연구소는 설립 취지 자체가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있다. 프라운호퍼라는 이름도 물리학자면서 동시에 대사업가로 이름을 날린 18세기 독일의 유명한 물리학자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를 기려 만들었다. 스펙트럼분석학의 기초를 이룬 프라운호퍼는 광학유리와 렌즈를 만드는 산업을 발전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독일의 연구소 조직을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막스플랑크라는 순수기술 연구소와 프라운호퍼라는 응용기술 연구소 그리고 대학이다. 대학은 두 연구소와 협업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며, 막스플랑크와 프라운호퍼 모두 독일 정부의 투자를 받는다. 그러나 특이한 사항은 순수과학을 연구하는 막스플랑크와 달리 예산의 3분의 1만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점이다. 막스플랑크는 정부가 100% 예산지원을 함으로써 순수 과학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지만, 응용기술은 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인만큼 산업체와의 협력과 이익창출을 통해 나머지 예산을 확보할 수 있게 했다. 이 때문에 프라운호퍼는 예산의 3분의 2를 업체의 위탁 및 공적 자금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연구 프로젝트에서 얻고 있다. MP3플레이어의 원천기술 등이 프라운호퍼의 연구성과물이다. 협력 파트너는 독일 기업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정부·기업·대학을 막론한다. 우리나라 기업들과도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삼성종합기술원이나 현대자동차, 서울시, 서울산업대학 등과 각각 에너지·IT·생명공학 등에 관련된 연구를 함께하고 있다.

산업화가 목적이지만 산업의 기반이 되는 기초적인 기술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 부문에서는 최고 과학업적에 대한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무선통신·부품소재·마이크로시스템 등의 연구분야에서 기초 기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56개의 연구소가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는 것도 특이한 사항이다. 기술별로 세분화돼 나뉘어 있는 이들 연구소는 각자 어떤 파트너와 어떤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인지 결정권을 갖는다. 중앙조직은 이들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연구소 조직운영 방식도 더욱 산업과 밀접하게 맞닿아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요소 중 하나다.

◆한스 요르그 블링어 프라운호퍼 총재 인터뷰

 “당장은 시장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소는 미래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투자, 세계 최대 규모의 응용과학기술 연구소 프라운호퍼의 한스 요르그 블링어 총재가 말하는 ‘정부’와 ‘연구소’의 역할이다. 순수과학연구소인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달리 산업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기술을 산업화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인데도 그렇다. 오히려 산업보다 먼저 향후 큰 산업으로 클 수 있는 기술, 현재 산업에 절실한 기술을 찾아야 할 과제가 있다. 블링어 총재가 신재생에너지에 누구보다 큰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지난 4일 한국 사무소 개소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 그에게 미래 핵심기술·연구소 운영 노하우·인재양성 방안에 관해 집중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다음은 블링어 총재와 나누었던 일문일답이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서둘러 개발해야 할 연구과제는 무엇인가.

 ▲우리가 원자력 없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답이 원자력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 절약만으로는 미래에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현재 태양에너지와 지열에너지, 풍력 등이 가장 미래에 현실적인 대체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에너지 수요 전체를 충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대체에너지가 시장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태양에너지만 해도 실리콘을 사용해야 하는데 너무 비싸다. 그래서 에너지 개발 기술뿐 아니라 생산기술과 관련 소재 기술 개발도 병행해야 한다. 생산기술을 활용하게 되면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공정을 갖게 되며, 에너지 관련 여러 소재를 개발해 사용해야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프라운호퍼는 생산기술과 저렴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새로운 시설을 세운 바 있다. 깨끗한 실리콘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카드뮴을 사용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재생에너지는 언제쯤 대중화될 수 있을까.

 ▲독일과 남부 유럽에서는 이미 사용 중이다. 특히 독일 시민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태양에너지를 사용한다면 40% 비용을 정부가 지원해준다. 최근 독일은 주택법을 개정해 새 주택을 지을 때 에너지 사용 10% 이상은 재생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것을 강제하기도 했다. 우선은 태양에너지 가격을 낮추기 위해 태양전지에 RFID 같은 데에 활용되는 기술과 TV 스크린과도 같은 기술을 활용하려고 한다. 지금은 태양에너지가 수력에 비해 2∼3배 비싼데, 에너지 가격은 연동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또, 석유 같은 기존 에너지원들의 가격이 상승하게 되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5∼10년 후만 해도 가격이 비슷해져 상당한 발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한국과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어떤 것이 있나.

 ▲프라운호퍼 태양에너지 연구소(ISE)는 현재 서울시의 위임을 받아 에너지 랜드마크 건물을 개발 중이다. 이 건물은 모든 현대 에너지 절감기술을 집대성해 건립되며 신재생에너지원을 이용해 냉난방을 하게 될 것이다. ISE는 ‘에너지 제로 하우스’가 일년 내내 운영 가능하며 이와 같은 공간이 매우 안락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에너지 제로 하우스는 서울에서 열리는 메가시티 프로젝트 실무진의 연례회의에 맞춰 내년 건설 작업이 시작될 예정이다. 또 유기재 진공분리기 한국 생산업체인 선익시스템과 드레스덴의 프라운호퍼 광학 마이크로시스템 연구소(IPMS)가 제휴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및 태양전지 생산에 응용되는 제품기술을 향상시킬 것이다.

 -한국 연구소에 평가를 내린다면.

 ▲기업의 연구조직은 파워풀하다. 산업은 자동차와 IT 부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R&D 역시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산업과 연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연구기관을 찾기 힘든 것 같다. 프라운호퍼는 산업에서 필요한 응용과학기술을 연구하고 이 결과물을 산업계에 도입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한국도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끌어내고 이 지식을 가지고 다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지식이 다시 돈이 되는 사이클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프라운호퍼는 주로 중간 규모의 산업이 큰 시장이 되도록 키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대기업과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많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중간규모 산업에 대해 연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프라운호퍼는 가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나.

 ▲프라운호퍼는 출발부터 산업과 연결해서 연구를 시작했다. 예산의 3분의 1 정도는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개발되지 않은 기술에 대해 계획을 세울 수도 없다. 정부는 지원을 해주지만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는 재량에 맡긴다. 나머지 예산은 연구개발 성과를 산업에 이전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해 확보한다. 이것 역시 자유재량에 의해 투자를 받고 사용한다. 정부 예산 지원을 받으면서 산업과 끈끈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유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매니지먼트 타깃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이다. 어떤 프로젝트는 성공하고 또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하다. 전체 미션을 세우고 관리를 해가야 하는 이유다. 프라운호퍼 조직의 특성은 조직이 최대한 분권화돼 있다는 것이다. 개별연구소 56개가 있는데 각각 연구하는 콘텐츠가 다르다. 연구 과제와 운영 방식 등은 각자 결정하고, 필요할 때만 중앙에서 관리한다. 4명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있는데, 이는 각 리더들의 그룹으로 구성된다. 상향식과 하향식, 이를 접목시켜서 통합시키고 절충하는 절차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프라운호퍼가 오랜 기간 쌓아온 노하우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독일 정부에서도 인정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잇는 방식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뛰어난 인재들을 관리하는 비결은.

 ▲독일에서는 대학(원)을 졸업한 인재들이 기업체가 아니라 연구소에 먼저 취업한다. 독일의 우수한 공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가장 많은 학생(25%)이 프라운호퍼에 가고 싶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이들은 연구소에 들어와 기업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직접 해당 기업들의 문화를 체험하고 배울 수 있다. 어떤 기업이 자신에게 맞는지, 어떤 기업이 비전이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연구조직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면 몇 가지 대안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가장 첫 번째로는 연구소와 인재양성에 대한 정확한 전략이 있어야 하고,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전체 프로세스를 관리할 수 있는 기술관리 시스템도 필요하다. 또 과학과 연구분야에서도 세계화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유럽에서 학위를 받는 것이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은 더욱 쉽게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체제를 개편했다. 미국은 개방적 정책으로 세계의 인재를 유치하는 데 성공한 사례다. 독일도 아직까지는 충분하지 않지만 더 많은 인재를 받아들이기 위해 점점 개방화해가고 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kr

 

 <한스 요르그 블링어 총재 약력>

1974년 슈투트가르트 대학 기계공학 전공(생산기술 분야) 박사학위 취득

1975년 프라운호퍼 IPA(Institute of Manufacturing Engineering and Automation) 연구소 기업 기획 담당 부서장

1980년 하겐 대학에서 산업과학·인간공학 교수 역임

1981∼2002년 프라운호퍼 IAO(Institute of Industrial Engineering) 연구소장 역임

1982∼현재 슈투트가르트 대학 산업과학·기술경영 교수

2002. 10∼현재 프라운호퍼 연구소 컨소시엄 본부 원장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프라운호퍼는 독일의 막스플랑크와 함께 독일 과학기술 개발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연구소로, 응용기술을 연구한다.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18세기 독일의 유명한 물리학자인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를 기려 만든 연구소다. 스펙트럼분석학의 기초를 이룬 프라운호퍼는 광학유리와 렌즈를 만드는 산업을 발전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독일 전역 56개소가 컨소시엄 형태로 운영되는 연구소로 연간 예산만 13억유로(약 2조원)가 투입되며 1만3000여명의 직원이 독일 전역에서 연구활동을 진행 중이다.

 특이한 사항은 순수과학을 연구하는 막스플랑크와 달리 예산의 3분의 1만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점이다. 막스플랑크는 정부가 100% 예산지원을 함으로써 순수 과학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지만 응용기술은 산업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인만큼 산업체와 협력해 이익창출로써 나머지 예산을 확보할 수 있게 했다. 이 때문에 프라운호퍼는 예산의 3분의 2를 업체의 위탁 및 공적 자금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연구 프로젝트에서 얻고 있다. MP3플레이어의 원천기술 등이 프라운호퍼의 연구성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