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이공계 인재 비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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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이공계 정말 큰일났네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오랜만에 안부를 묻기 위해 연구계에 몸담고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신호음을 기다리고 있자니 상대방 쪽에서 들려온 첫마디다. 안부도 물을 새 없이 들려온 말이었기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했더니 “상가에 조문차 와 있는데 너무 허망하고 허탈해서 그런다”며 목청을 높였다. 직접 얼굴을 보면서 통화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늘게 떨리는 지인의 목소리에 섞인 격앙된 감정은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유는 이랬다. 과학고를 2년 만에 수석으로 졸업하고 KAIST에서 석사를 받은 전도양양한 인재가 이공계에는 비전이 없다며 진로를 바꿔 서울시내 주요 대학 법대에 입학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처지를 비관해 그만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공계에서 성공해보겠다는 국제올림피아드 입상자들이 하나 둘 의대나 법대로 전향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쉽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상황이 이쯤 되니 말문마저 막힌다.

 미래 성장 주역인 청소년이 자연스럽게 과학기술에 흥미를 갖게 하고 이공계 대학에 지원해 창의적 과학기술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과학기술 강국을 자처하는 우리 정부의 과제이자 책무다. 이공계에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꿈을 주고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면이 많다. 국제올림피아드나 각종 경시대회는 특목고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한 수단쯤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각종 대회들이 애초의 좋은 취지와는 달리 입시용 정도로 활용되는 실정이 아쉬울 따름이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원하는 이공계 대학에 들어가 성공적으로 졸업했다 하더라도 이후가 문제다. 철저하게 시장경제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처우를 보게 되면 한숨이 절로 난다. 평소엔 소중한 인재라고 치켜세우다가도 승진이나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는 이공계 출신 인사나 의견이 배제되는 일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까지만 해도 그토록 강조하던 과학기술을 이명박 정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부총리 부서로까지 확대한 과학기술부를 같은 부총리 부서인 교육인적자원부와 합쳐 하나로 만들어놨다. 청와대에서도 보좌관(정보과학기술보좌관)급에서 수석급(교육과학문화수석)으로 격상시켰나 싶었더니 세 개 부처의 기능을 하나로 묶어놨고 그 아래에 과학을 담당하는 비서관실을 하나 두는 걸로 구색을 맞춘 수준이다.

 말로만 과학기술 강국, 이공계 우대를 외칠 것이 아니라 이공계를 지원하는 젊은 희망들이 창의력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그것도 입시경쟁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라 진정으로 좋아서, 하고 싶어서 찾는 이공계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수한 두뇌를 가진 공학도가 꿈을 마음껏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을 만들어 주는 것. 그 꿈과 희망을 담은 그릇이 과학기술 강국으로 가는 길에 소중히 쓰일 수 있고 진정으로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일 것이다. 유망한 젊은 과학도의 희생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주문정기자 mj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