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e & Biz](27)박철원 에스텍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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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은 다른 술과 달리 스토리가 있어서 좋아요. 히딩크가 월드컵 승리를 자축하며 샤토 탈보를 마신 것처럼 사업상 만남의 주제와 어울리는 와인이 있으면 이야기를 풀기가 쉽습니다.”

 박철원 에스텍 회장은 본래 술자리에서 주종을 가리지 않았다. 술이란 사람들과 널리 사귀기 위한 도구일 뿐 소주인지, 양주인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는 자신만의 음주철학 때문이다. 소탈한 성품의 박 회장도 유독 와인을 고를 때는 레이블과 빈티지 등을 깐깐하게 따진다. 와인이 그저 알코올음료가 아니라 즐거운 대화를 끌어내는 문화상품이란 점을 알기 때문이다.

 “3년 전 한 CEO 강좌에서 와인수업을 처음 받았습니다. 솔직히 와인맛은 잘 몰랐지만 수업이 끝나고 젊은 CEO, 여성CEO들과 와인바에서 편안히 즐기는 분위기가 너무 좋더군요.”

 워낙 사람을 좋아하던 박회장은 와인을 이용해 새롭게 인맥을 넓히는 방법을 금방 이해했다. 우선은 와인을 제대로 알아야 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추진력으로 와인 공부에도 무섭게 파고들었다.

 “눈 감고 와인맛을 구별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와인에 얽힌 이야기를 배운다고 생각하니 참 재미가 있더군요. 와인 공부를 너무 형식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박 회장은 자신이 익힌 와인 지식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매달 지인들에게 e메일로 보낸다. 그가 전하는 와인 이야기는 감수성이 넘쳐 경비인력 6000명을 거느린 국내 1위 경비업체의 회장님이 쓴 글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는 삼성물산 모스크바 지사시절에 러시아 파트너와 거의 매일 보드카로 술대결을 벌일 정도로 독주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도 요즘은 몸에 부담도 덜 주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와인 쪽에 손이 더 자주 간단다.

 이날 강남의 모 한식점에서 선택된 와인은 프랑스산 샤토 리곤드라 마고다. 마고라는 지역명이 풍기듯이 맛과 향이 부드럽고 우아해서 한식 불고기와 잘 어울렸다. “2차 대전 이후 아데나워 독일 수상은 이웃 프랑스와 화해하기 위해 샤토 마고에 가서 사과성명을 발표했답니다. 껄끄러운 자리에서 마고란 이름은 이야기를 부드럽게 끌어가기에 좋습니다.” 그래도 그랑크루 1등급의 샤토 마고와는 다르지 않느냐고 지적했더니 인근 지역에서 나온 프랑스 와인이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받아친다. “어떤 와인을 마시는지보다 누구와 어떤 의미로 마셨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남자는 역시 와인 맛보다는 인간관계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배일한기자 bailh@, 사진=정동수기자 ds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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