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글로벌 금융시장 `국부펀드`가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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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우리나라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는 서브프라임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메릴린치에 20억달러를 투자했다. 같은 달 시티그룹도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포르, 쿠웨이트 등의 국부펀드로부터 145억달러 신규 자본 유치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모건스탠리도 지난해 12월 설립 이후 처음으로 중국투자공사로부터 50억달러를 유치했다.

 이처럼 대형 투자은행(IB)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중동, 아시아계 국부펀드로부터 신규 자본 수혈이 진행되고 있다. 바야흐로 국부펀드가 전 세계 금융 시장의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국부펀드는 외환보유액과 재정흑자 등 국가가 쓰고 남은 돈을 재원으로 전 세계 부동산, 주식, 채권 등 수익성 높은 자산을 찾아 투자한다. 원유 판매 등으로 외환보유액이 늘어난 중동 산유국 등에서 주로 운용하고 있어 전 세계 국부펀드 중 50%가 중동국가에, 약 29%가 아시아 국가에 분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도 유망 투자 방안으로 국부펀드 설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문가는 “국부펀드가 세계 경제 흐름을 촉진하고 국제 경제 구도를 변화시키는 원천”이라며 “앞으로 국부펀드에 대한 동향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운용 중인 최대 규모의 국부펀드는 UAE의 아부다비투자청(ADIA)으로 총 8750억달러를 운용하고 있으며 3300억달러를 운용하는 싱가포르투자청(GIC)도 유명하다. 2005년 설립된 우리나라 국부펀드인 KIC는 300억달러 규모를 운용 중이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국부펀드 총액을 2조5000억∼3조달러로 추산한다. 사모펀드 2조달러, 헤지펀드 1조4000억달러보다 많은 수준이다. 국부펀드의 규모는 2015년까지 11조∼12조달러로 늘어나 전체 주식시장의 10%가량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운용 국가가 늘어남에 따라 오일펀드 중심이었던 국부펀드의 모습도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국부펀드 자산 가운데 3분의 2는 원자재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달러로 설립된 ‘오일달러형 국부펀드’였다.

 그러나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달러로 설립된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출달러형 국부펀드는 1조2000억달러로 지난 한 해 동안 두 배 증가한 데 이어 2015년에는 전체 국부펀드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우리나라 국부펀드인 KIC도 세계적 흐름에 동참하며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메릴린치에 대한 20억달러 투자 이후 세계 금융가의 주목을 받으면서 KIC의 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애정공세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알리스테어 달링 영국 재무장관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KIC의 영국투자 확대와 런던사무소 개소를 요청하기도 했다.

 국부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만큼 우리나라 국부펀드인 KIC는 설립과 운용목적을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형태 한국증권연구원장은 “자산규모나 투자전략 차원에서 차별적 특성이 부족하고 어정쩡한 상태”라며 “설립과 운용목적을 명확히 한 후 설정된 목적이나 자금조달원에 적합한 투자전략과 대상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부펀드가 나라에 의해 운용되는 펀드다 보니 순수한 수익 추구가 아닌 국가전략적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서방국가의 주장도 국부펀드가 넘어서야 할 과제로 꼽힌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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